[문화 읽기] 곰팡이도 작품에 속하나?

관리자 2024. 2. 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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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말에 출간돼 지금은 절판된 외서를 구하기 위해 해외 온라인 중고서점을 이용했다.

수천㎞ 떨어진 미국에서 배송된 상자를 열어보니 책은 습기를 먹어 군데군데 곰팡이가 펴 있었다.

서재에 쌓아둔 책에서 나오는 먼지와 곰팡이 포자가 잔기침의 주된 원인이라고 들은 탓이다.

배송된 책을 읽기는 해야겠는데 곰팡이 먼지를 들이마시긴 싫으니 갈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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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 포라스 김, ‘만기의 순간 나타난 영원한 흔적’, 2022, 모슬린에 감자한천배지, 번식된 곰팡이 포자들. 국립현대미술관

20세기말에 출간돼 지금은 절판된 외서를 구하기 위해 해외 온라인 중고서점을 이용했다. 수천㎞ 떨어진 미국에서 배송된 상자를 열어보니 책은 습기를 먹어 군데군데 곰팡이가 펴 있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어렵사리 원하던 책을 구했다는 기쁨이 너무도 큰 나머지 곰팡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요즘엔 그것부터 눈에 들어온다. 서재에 쌓아둔 책에서 나오는 먼지와 곰팡이 포자가 잔기침의 주된 원인이라고 들은 탓이다.

알지도 못하는 외지에서 성분을 파악할 수 없는 곰팡이가 내 서재까지 침투한다는 건 찜찜한 일이다. 코로나 시기를 겪고 난 후 세균·곰팡이·바이러스 같은 것에 아는 것도 많아졌고, 예민해지기도 했다. 과학 작가인 에밀리 모노선이 쓴 책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을 최근에 읽어선지 곰팡이의 존재를 더 의식하게 됐다.

곰팡이는 어디에나 있다. 깜박 잊고 유통기간이 지나버린 요구르트 통엔 녹색의 곰팡이가 올라오고, 며칠 지난 식빵에는 하늘색 곰팡이가 붙는다. 지구 바깥의 다른 행성에 다녀온 우주비행사가 자기도 모르게 외계 미생물을 우주선에 묻혀 와서 지구를 오염시킨다는 내용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박물관도 곰팡이투성이일지 모른다. 박물관에서 유지하는 습도와 온도는 곰팡이가 활동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한국·콜롬비아계 갈라 포라스 김(Gala Porras Kim)은 미술가의 입장에서 박물관 곰팡이에 주목했다. 2023년 올해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선정돼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작품을 전시 중인 그는 유물이 원래 장소에 있었던 때와 박물관에 옮겨온 다음에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에 의문을 두고 작업하는 미술가이다.

문화유산은 박물관에 안치되면서 원래 그것이 놓여 있던 의미를 상실하고, 그 박물관의 분류법에 따라 진열되고 재해석된다. 포라스 김은 영국박물관 수장고에 서식하며 은연중에 박물관 자산의 일부가 돼버린 곰팡이의 본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미생물을 배양하는 배지를 덧댄 천을 놔둬 곰팡이 포자들이 옮겨가도록 유인한 것이다. 현대미술관 전시장에 걸리니 묘하게도 현대 추상화처럼 보인다.

곰팡이는 한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선호하는 숙주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흙 속에서 포자 상태로 휴면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단다. 배송된 책을 읽기는 해야겠는데 곰팡이 먼지를 들이마시긴 싫으니 갈등이 생긴다. 마스크와 면장갑을 낀 채 책을 읽고, 큰 지퍼백에 밀봉해 보관하기로 했다. 곰팡이에게서 나를 지키는 2024년식 건강 독서법이라고나 할까.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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