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키 쥔 파월, 美대선 킹메이커로

뉴욕/윤주헌 특파원 2024. 2. 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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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내리느냐에 따라 민주당에 유리하거나, 공화당에 유리하거나
1월 31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우리는 결정을 내릴 때 정치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고려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4일 공개된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서 “정치가 (기준금리 결정에) 어느 정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파월은 “연준은 모든 미국인을 위해 봉사하는 비(非)정치적 조직”이라면서 “정치라는 요인을 고려한다면 경제적 결과는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파월은 연준과 정치를 분리해달라고 강조했지만, 올해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 정가에서 파월 의장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재선을 시도하는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의 2파전으로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승부를 판가름할 결정적인 변수로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등 경합 주(州) 표심 못지않게 ‘세계 경제 대통령’ 파월이 떠올랐다. 미 통화정책을 이끄는 그가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발표하는 시점이 바이든과 트럼프의 유불리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연 5% 넘게 치솟은 기준금리를 연준이 빨리 내리면 내릴수록 시중 금리가 낮아져 가계 부담이 줄어든다. 이 경우 주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에게 밀리는 바이든은 우수한 경제 정책 성적표를 유권자들에게 자랑하며 판세 역전을 노릴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파월의 빠른 금리 인하가 ‘대선용 꽃놀이패’나 다름없는 셈이다. 반면, 공화당 입장에서는 파월이 기준금리 인하라는 카드를 바이든 입장에서 유리한 시점에 쓰지 않고 아껴두길 바라는 속내를 내비치고 있다. “연준 의장이 ‘킹 메이커’가 된 듯하다”는 우스갯소리가 금융권이 모여 있는 뉴욕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파로 물가가 치솟자 연준은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11차례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2022년 6월 기준 9.1%에 달했던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지난해 6월 들어 3%대로 내려앉으면서 연준의 금리 인하는 시간 문제일 뿐 기정사실화된 지 오래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긴급회의가 열리지 않는 이상 1년에 8번 열린다. 1·3·4·6·7·9·11·12월 회의 가운데 파월이 언제 기준금리를 내릴지가 관건인데, 연준은 지난달 31일 회의 땐 5.25~5.50%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3월 인하설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물가 상승세와 고용 시장이 여전히 식지 않았다는 이유다. 시장은 ‘5월 이후’를 점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애가 탄 듯 노골적으로 연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 의회 상원 은행위원장인 셰러드 브라운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파월에게 “제한적인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올바른 도구가 아니다”라며 금리 인하를 촉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부 민주당원들은 연준이 높은 금리를 너무 오래 유지해 바이든 재선이 위태로워질까 봐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도 두고만 보지는 않았다. 그는 2일 미 폭스뉴스 방송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 등 민주당을 돕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정치적인 그를 의장으로 다시 임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2018년 파월을 처음으로 연준 의장에 앉힌 장본인은 트럼프다.

여야의 정치적 셈법과 별개로, 파월은 까다로운 숙제를 마주하고 있다. 연준이 “물가가 이만하면 안정됐다”고 판단하는 대표적인 기준은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2%에 근접하는지다. 일시적인 요인에 따라 등락폭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빼고 집계한 PCE 지수 등락률로 전반적인 물가 추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PCE 상승률은 2.9%로, 2021년 3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2%대로 내려앉았다. 금리 인하론자들은 이 수치를 근거로 “높은 물가가 잡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연준의 결단을 좌우할 또다른 기준인 노동시장이 아직 과열 상태라는 점이 문제다. 지난달 비농업 일자리 증가폭(전월 대비)은 전문가 전망치(18만5000건)의 거의 2배 수준인 35만3000건에 달했다. 미 ABC 방송은 “경제가 뜨거워지면서 금리 인하 시점이 몇 달 지연될 수 있다”며 “금리를 너무 빨리 인하하면 물가 상승이 다시 가속화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언제 기준금리를 인하할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있다”는 파월의 4일 CBS 인터뷰 발언이 공개되면서 5일 미 국채 금리는 상승하고 증시는 떨어졌다. 이날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4.16%로 직전 거래일보다 0.14%포인트 상승했고,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0.11%포인트 오른 4.47%에 마감했다.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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