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주기 무서워 고향 못 가는 中직장인
“다A(중국 본토 증시 A주)라도 올라야 고향에 내려가 세뱃돈을 뿌리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중국 설)를 앞둔 5일, 베이징의 직장인 수십명이 속한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단톡방에는 귀성을 두려워하는 푸념 글이 속속 올라왔다. 투자한 주식은 반 토막 나고 월급은 동결됐는데 ‘세뱃돈 인플레이션’은 심각해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유교 문화권인 한국·일본과 마찬가지로 새해에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절을 하고 돈을 받는 세뱃돈 문화가 있다. 중국어로 세뱃돈은 ‘야쑤이첸(壓歲錢)’으로, ‘나쁜 일을 누르는 돈’이란 뜻이라 주는 사람 입장에서 아끼기가 쉽지 않다.
올해 중국 대도시에서 쿵구이족(恐歸族·귀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난 가장 큰 이유로 세뱃돈이 꼽힌다. 누적된 업무 피로, 비싼 교통비, 결혼과 출산 독촉을 제치고 세뱃돈 지출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세뱃돈 지출은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월급을 넘기도 한다. 중국 광시성에 거주하는 허모(35)씨는 “환갑을 훌쩍 넘긴 아버지가 10여 명의 손자·손녀들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깼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비교적 젊은 연령층에서도 어린 조카 등 친척에게 줘야 하는 세뱃돈 부담이 상당하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조카에게 50위안(약 9200원) 정도를 ‘훙바오(紅包·붉은 봉투)’에 넣어주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못해도 200~300위안(약 3만7000~5만5000원)은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우인(중국판 틱톡)·샤오훙수 등 소셜 미디어에서 아이들이 세뱃돈을 ‘인증’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세뱃돈 ‘최소 금액’이 가파르게 오른 탓이다. 중국 대도시의 5년 차 직장인 쉬모씨는 현지 매체에 “재작년부터 고향에 못 갔다”면서 “명절에 조카들에게 줄 세뱃돈을 마련하기가 갈수록 벅차다”고 했다.
고향의 세뱃돈 시세를 파악하려는 어른들의 눈치 전쟁은 치열해졌다. 웨이보 등 소셜 미디어에서는 매년 각 지역의 평균 세뱃돈 금액을 표시한 ‘중국 세뱃돈 지도’가 올라온다. 이 지도에 따르면 대부분 지역에선 세뱃돈 봉투에 평균 300~800위안(약 5만5000~14만7000원)을 넣어주지만, 부유한 동부 연안 지역은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준다. 세뱃돈 부담이 가장 큰 푸젠성은 보통 한 봉투에 3500위안(약 65만원)을 넣는다. 푸젠성에서도 가장 유명한 부촌인 푸톈(甫田)은 아이들에게 사업 종잣돈을 마련해주는 문화가 있어 1만2000위안(약 221만원)씩 준다. 중국 수도 베이징(2900위안)과 저장성(3100위안)·상하이(1600위안)도 세뱃돈 스케일이 크다. 특이하게도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한 곳인 광둥성은 실용적인 문화로 인해 친인척에게 주는 세뱃돈은 50위안(약 9200원) 정도로 소박한 반면, 단골 카페나 식당의 종업원들에게는 통 크게 새해 팁을 준다.
중국에서는 연인 사이에 세뱃돈을 주고받는 문화도 있다. 일부 젊은 남성은 조카 대신 여자 친구에게 돈을 몰아주기도 한다. 웨이보에서는 이달 들어 “남자 친구에게 세뱃돈을 두둑하게 받았다”면서 인증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 웨이보 계정은 붉은색 100위안 지폐가 가득 담긴 원통 모양의 루이비통 가방 사진을 올리면서 “내 평생 가장 만족스러운 훙바오”라고 했다. 중국어 발음이 ‘사랑해(我爱你)’와 비슷한 520위안(약 9만6000원)이나 ‘일생일세(一生一世)’를 연상케 하는 1314위안(약 24만2000원)을 봉투에 넣는다.
세뱃돈 시세가 오를수록 빈곤층과 노인 등의 금전적 부담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세뱃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국 지방정부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안후이성 푸양시는 최근 농촌 주민들에게 세뱃돈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확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홍보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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