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1] 국회에서 열린 종북 세미나
악은 가스와도 같다. 눈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냄새로 식별할 수 있다. 악은 걸핏하면 정체되어 숨 막히는 층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형태가 없기 때문에 악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다가 악이 해놓은 일을 발견한다. 악이 차지한 지위와 이룩한 과업을 보고서야 자신이 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가스를 몰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사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가스는 팽창, 탄력, 압축, 억압의 특성을 갖고 있다.’ 바로 악의 특성이 아닌가.
-아멜리 노통브 ‘오후 네 시’ 중에서
어린 시절 등하굣길에 잡상인이 있었다. 장사엔 관심이 없는 듯 귀에 늘 무언가를 꽂고 골똘히 앉아 있었다. 소형 무선 라디오나 이어폰이 흔치 않을 때였다. 호국 보훈의 달이면 미술 숙제로 반공 포스터를 그렸고 수상한 사람을 보면 113으로 신고하라고 배운 아이 눈엔 그 아저씨가 꼭 간첩 같아서 곁을 지날 때마다 무서웠다.
공산당은 뿔 달린 늑대라는 두려움을 심어준 교육은 나쁜 것이었을까? 이젠 ‘광화문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생각이 상식이 됐다. 심지어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남한 영토를 정복하려는 북한의 전쟁관은 정의로우니 그들의 방식을 수용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이에 반성이나 사과도 없고 불이익과 제재도 없다. 윤미향 의원은 “반북, 멸북 정책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된다”고 했다. 그녀가 말한 우리는 누구일까? 우연히도 얼마 전 이재명 야당 대표는 ‘우리 북한’이라고 말했다.
자칭 사회주의자라던 전 법무부 장관을 사회주의자라고 했더니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추종자의 협박성 댓글을 받은 적 있다. 전 정권 수장을 빨갱이, 간첩, 공산주의자, 김일성주의자라 부른 사람들은 강단과 국정감사장에서 쫓겨나고 명예훼손죄, 국회 모독죄로 고발당했다.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비판을 금지하는 법까지 생겼다. ‘나는 정의로운 표현, 너는 성역 모독, 내 자유는 무제한, 네 자유는 없을 무(無)’다.
‘사랑채 빌려주면 안방까지 달라 한다’는 말이 있다. 추운 사막의 밤, 코를 허락받은 낙타는 얼굴과 몸통과 네 발을 들이민 뒤 끝내 주인을 내쫓고 텐트를 차지한다. 종북 세력이 내뿜는 가스가 자욱하다. 여긴 우리 대한민국, 우리나라일까, 그들만의 조국 ‘너희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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