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죄송합니다’라는 사과

경기일보 2024. 2.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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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무인카페를 처음 와서 모르고 얼음을 쏟았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고 치우겠습니다.” 올해 초, 무인카페에 얼음을 쏟은 한 초등학생이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와 함께 남긴 쪽지 글이다. 점주는 학생의 기특한 모습에 크게 감명한 나머지, 평생 카페 무료 이용을 약속했고, 지금도 학생과 매일 만날 정도로 절친이 됐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책임지는 모습이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가능케 한 것이다.

지난해 노량진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노부부가 배달앱에 달린 혹평 리뷰에 남긴 댓글 역시 여전히 감동이다. “오이를 빼달라”는 요청을 무시했다는 리뷰엔 “너무 너무 좨송합니다. 너무큰실수를햇내요. 앞으로는 조심또조심하갯읍니다”라 하고, “냉면에 육수가 없고 면은 다 불었다”는 글엔 “너무 좨송합니다. 다음엔 육수 만이 드릴개요”라고 답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오히려 불만 글을 남긴 고객들이 괜히 미안해질 지경이다. 오타범벅에 띄어쓰기조차 엉망인 이 짧은 댓글은 사람들을 울컥하게 만들었고, 이 가게는 하루 1000건의 주문이 몰려들며 소위 돈쭐을 당하게 됐다.

이유가 뭘까? 그저 사과했을 뿐임에도,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진심’이다. 이들의 사과에는 변명이 없다. 그렇게까지 사과할 일이 아님에도,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 흔한 남탓조차 없는 것이다.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깊이 사죄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마치 신세계를 본 듯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에 인색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제대로 된 사과를 받는 것에 목말라했던 게 아닐까?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늘상 “정치적 보복이다”, “오해가 있다”라며 일단 잘못을 부인하는게 공식이 됐다.

그러다 결정적 증거가 나오거나 아예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그제야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려 유감”이라는 사과인지 아닌지 모를 애매한 표현으로 대충 넘어가곤 한다. 이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사죄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마지막엔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다”거나 “평생 운동만 해서 세상물정에 어두웠다”는 미사여구는 꼭꼭 챙기는 모습이다.

“죄송합니다”라는 이 한마디가 왜 이리 ‘하기 힘든 말’이 된 건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인지 어린 학생과 노부부의 진심 어린 사과는 쿨하다 못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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