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대 정원 늘린다고 세상에 어떤 나라 의사들이 파업하나

2024. 2. 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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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부작용 있어도 필수의료 확충 시급
지금 늘려도 10년 뒤에나 효과 체감

정부가 내년도 대학 입시에서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했다.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 후 27년 만의 입학 정원 확대다.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때 조제권을 약사에게 넘긴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10% 감축됐고 2006년 이후 지금까지 3058명을 유지해왔다.

한 번에 2000명 증원이 다소 파격적이긴 하지만, 국내 의료 여건에 비춰볼 때 미래 의사 수 확대는 불가피하다. 내년부터 늘려도 국민이 그 효과를 체감하려면 10년 안팎을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의대 정원 현실화가 많이 늦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같은 말이 나올 정도로 붕괴 직전에 있다. 지난해 서울 빅5 병원의 전공의 모집 때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외산소’(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에서 대거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졌을 정도다. 지방은 말할 것도 없다. 억대 연봉을 내걸고도 의사를 못 구하는 지방병원이 수두룩하다. 필수의료 공백으로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사망한 환자가 2021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강원 49.6명, 경남 47.3명 등으로 서울(38.6명)보다 훨씬 많다. 의대 증원 없이는 이런 문제를 풀기 어렵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 대비 의사가 절대 부족하다.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는 2021년 기준 2.6명(한의사 포함)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2.5명)를 빼면 가장 적다. OECD 평균 3.7명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 명당 7.3명으로 이스라엘(6.8명), 일본(7.2명)에 이어 세 번째로 적다.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늘어날 게 뻔하다. 보건복지부는 “2035년이 되면 의사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본다. 복지부가 지난해 전국 40개 의대 대상으로 정원 확대 수요를 조사했을 땐 2025학년도에 최소 2151명, 2030학년도에 최소 2738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총파업을 예고한 건 개탄스럽다. 의사단체들은 ‘지금도 의사가 충분하다’거나 ‘인구 감소로 의료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논리를 펴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잉진료를 부추길 것’이란 의사들의 주장도 의대 증원 반대가 아니라 의료 쇼핑과 의사들의 과잉진료 유도를 줄이는 방법 등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다. 환자를 볼모로 한 의사 파업은 명분이 없을 뿐 아니라 ‘밥그릇 지키기’로 비칠 뿐이다. 일부 의사는 소아과 오픈런에 대해 “젊은 엄마들이 일찍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아이들을 영유아원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 타임을 즐기려는 경우가 있다”고 삐뚤어진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의료계와 소통 없는 일방적 강행”이라는 의협의 기자회견도 어이없다. 의대 증원 논의가 이번에 처음 나온 얘기던가. 세상에 어떤 나라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파업하는지 묻고 싶다.

의대 증원은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사안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다. 11월 조사에선 82.7%였는데 더 높아졌다. 물론 의대 증원만 하면 곧장 필수·지방의료 공백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의대 정원을 늘려도 지금 상태로는 의사들이 돈 되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나 편안한 ‘정재영’(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으로 몰릴 것이란 의사단체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이 때문에 필수의료 수가 인상, 지방 근무 여건 개선 등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의대 증원 없이 필수·지방의료의 구멍을 메우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의사들도 ‘파업 불사’만 외칠 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의대 증원이 의대 쏠림을 더 부추겨 이공계를 초토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정부의 과제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하지 말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도 의대 증원을 하려고 했다. 의대 증원은 여야를 떠나 국가적으로 필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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