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DJP 연합’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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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됐다.
지금은 여·야간 정권이 교체된다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그때까지는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된 적이 없다.
여·야 간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것이 많았다.
'DJP 연합'의 정치사적 의미는 정상적인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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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됐다. 지금은 여·야간 정권이 교체된다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그때까지는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된 적이 없다. 이승만 정권은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을 시도했지만, 1960년 4·19혁명으로 무너졌다. 내각제 개헌을 통해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로 몰락했다.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1979년 10·26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박정희 사후에는 전두환의 12·12 군사 쿠데타로 다시 군부정권이 들어선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졌다. 하지만 야권 분열로 전두환에 이어 군부 출신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탄생한 것도 여당과의 합당을 통해서 이뤄졌다.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는 아니었다.
그리고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됐다. 여·야 간 실질적인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것이 많았다. 강고한 기득권층의 저항과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그것이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경험하지 못한 국민의 정치의식도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결국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만약 IMF 금융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가능했을까 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정권교체가 가능했던 것은 박정희의 2인자였던 김종필과의 연대가 결정적이었다. 김대중과 김종필의 이른바 ‘DJP 연합’이다. 김종필과의 연대는 평생 색깔론에 시달렸던 김대중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불식시켰다. 당시 김종필의 지역기반인 충청권의 지지도 한몫했다. 이들의 연합으로 김대중·김종필 연합 정권이 탄생한 셈이다. 김종필은 국무총리가 됐고, 그의 사람들은 내각에 참여했다.
‘DJP 연합’의 정치사적 의미는 정상적인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 제도로 치러지는 이번 총선도 여러 정파 간 연대가 예상된다. 그럼 ‘2024년 판 연합정치’는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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