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장 세상을 잇고, 추억을 품다] 1. 홍천 자은리 ‘차부집’ 금강슈퍼마켓

유승현 2024. 2. 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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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떠난 자리, 사람 냄새 그리는 ‘마을 사랑방’의 꿈
두촌면 자은리 ‘차부집’ 금강슈퍼마켓
1972년 터 잡고 50년 사랑방 역할 톡톡
2000년대 초까지 하루 수십번 버스 왕복
차표·잡화 팔며 사람 북적댔던 호시절도
현재 운행 축소로 버스표 사는 사람 없어
2006년 4차로 확장 우회도로 ‘발길 뚝’
학생이었던 손님 60대 돼서 찾아오기도

수도권과 강원도의 창구역할을 해왔던 서울 상봉터미널이 최근 문을 닫았습니다. 1985년 이후 40여년간 운영돼 온 상봉터미널의 폐쇄는 많은 강원도민에게 아쉬움과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터미널은 누구에게는 만남과 기대, 누구에게는 이별과 기약의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지나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정거장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뜨거운 삶의 현장이기도 했고 마을 사랑방이기도 했습니다, 강원도민일보는 창간 32년을 맞아 시공간을 넘나드는 우리들의 기억, 정거장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정거장 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지나가는 버스와 함께 놓쳐버린 혹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삶의 공간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홍천에 홍천터미널 말고도, 옛 번성을 기억하는 작은 버스 매표소가 4곳 있다. 남면에 시동리 황금마트, 양덕원리 세븐일레븐과 두촌면 철정리 에덴슈퍼, 자은리 금강슈퍼마켓이다. 이곳들은 모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역의 작은 터미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가는 사람도 많았고, 그들을 싣기 위한 시내·외 버스가 연신 다녔다. 현재도 버스표를 팔고 있는 두촌면 자은리 금강슈퍼마켓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 양봉춘 씨의 시간

‘차부집’이라는 이름으로 자은리 버스터미널을 기억하는 양봉춘(87) 씨를 만났다. 차부(車部)는 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터미널이란 뜻이다. 1950~60년대 시골에는 버스가 드나들기 좋은 터에 장사를 하는 슈퍼, 식당 등에서 버스표를 팔았다. 이런 가게를 차부집이라고 불렀다.

양봉춘 씨는 두촌면 출신으로 19살에 시집와 면사무소 건너편에서 차부집을 하던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과 함께 5남매를 낳아 기르며 67세까지 자은리에 터전을 잡고 살다가 현재는 춘천으로 이사했다.

봉춘 씨는 15살에 한국전쟁이 나 포탄이 경찰서 마당에 날아와 터지는 걸 보고 피란길을 떠났다. 휴전 이후 자은리로 돌아와 결혼을 하게 됐다. 양구 출신인 시아버지 역시 고향에 많은 땅을 두고, 피난 끝에 자은리에 자리 잡았다.

봉춘 씨 기억에 따르면 지 씨(이름은 기억이 안남)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차부집을 운영했고, 이후 시아버지가 하다가 현재 이순길 대표한테 운영권이 넘어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계산해보면 1950년대부터 두촌면 자은리에 차부집이 운영된 셈이다. 봉춘 씨 시누이 남편이 이승춘(홍천·인제) 전국회의원이었고, 시아버지는 양구에 땅이 있어 생활이 그리 부족하진 않았다.

당시 자은리는 면사무소만 있는 지금과 달리 경찰서, 군부대, 철광, 농협이 있고, 5일장이 서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단칸방 하나에 5~6명의 식구들이 몰려 살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위생도 그렇고 참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경찰 간부와 식솔들, 군인, 광부 등 사람이 많으니까 술집도, 다방도, 식당도 많았어요.”

시부모가 버스표를 팔며 잡화점을 운영했다. 따로 휴게공간이 없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게나 봉춘 씨 집으로 들어와 겨울이면 화로에 시린 발을 내밀어 불을 쬐곤 했다.

“시어머니께서 깔끔하신 성격이라 사람들이 발을 쬐면 발냄새 난다고 내쫓곤 했어요. 5일장에 물건 팔러 오는 상인들이 버스를 타고 몰려오곤 했는데 특히 속초에서 버스에 생선을 싣고 와 우리 집에서 물을 빌려 생선을 씻으면 그 비린내가 싫다며 시어머니가 문을 걸어 잠그곤 했죠. 그러면 시아버지께서 ‘그 사람들도 다 먹고 살아야지’하며 넌지시 다시 문을 열어 얼마든지 물을 사용하게 해주셨어요.”

그 생선장수들이 고마운 마음에 명태, 꽁치 등을 줬는데 속초에서 갓 잡아 올라온 거라 그 맛이 지금도 어디에 비할바 없이 좋았다고 한다.

생선장수 뿐만 아니라 서울 등지에서 옷 장수들이 옷은 트럭으로 보내고, 본인들은 버스를 타고 와 트럭에 자신의 이름을 써 붙인 옷 꾸러미들을 찾기 위해 차부집 앞에서 판을 벌이는 풍경도 볼 만했다.

5일장이 서면 마을 주민들은 푸성귀를 캐다 팔았고, 타지에서 옷장수, 생선장수, 각종 먹을거리를 팔려는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볼거리가 가득했다고 한다.

■ 이순길 씨의 공간

금강슈퍼마켓은 1972년부터 현재 두촌면사무소 앞에서 버스 표를 팔기 시작했다. 당시 이순길(73) 대표가 22살로 남편 남장우 씨와 함께 가게를 열었다. 가게를 열던 해 첫 애를 낳아 올해 51세가 된 아들과 가게의 역사가 같다. 10여년 뒤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기며 ‘금강슈퍼마켙’이라고 간판을 내걸었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일일이 다 기억하진 못해도 버스터미널로 웅성웅성했던 시절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장사도 잘되고, 일하는 재미도 있었다.

처음엔 작은 초가집으로 시작했다. “그 전에는 인제 원통가려면 다 이 앞을 지나야 했어. 사람들이 이곳에서 버스를 많이 타니까 표도 많이 팔리고, 버스도 연신 오가고, 관광버스들도 쉬었다 가고 하다보니 작은 초가집으론 너무 좁잖아. 그래서 이렇게 마당을 넓게 해서 여기로 옮기게 된거지.”

이 대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내버스가 30분당 1대, 서울가는 직행버스가 시간당 있을 정도로 하루에도 수십여차례 버스가 드나들고, 사람들이 꽉 찼다고 회고했다. 화전민들이 많아 뚝방길 따라 집이 쭉 있었고, 마을이 북적였다. 명절 때면 손이 큰 남편이 과일을 궤짝 씩 들여 놔도 금방 금방 팔렸다.

그러나 44번국도가 4차선으로 확포장되고 우회로가 만들어지면서 정거장도 쇠락의 길을 걷게됐다. 금강슈퍼마켓 앞 도로는 군 농어촌도로로 변경, 마을로 들어오는 일부 주민들을 제외하면 차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 자연스레 금강슈퍼마켓 앞 정류장 역시 터미널 역할이 점차 축소됐다. 요즘엔 시내버스는 일일 15회 정도 운행된다. 서울 가는 직행버스는 일일 4대 뿐이다. 그마저도 타는 사람이 드물어 예전에는 매일 묶음 단위로 팔리던 버스표 1묶음(100장)을 현재는 한 달이 지나도 채 다 팔지 못한다. 금강슈퍼마켓에서는 홍천 시내와 서울, 그리고 인제 원통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오간다.

그래도 1980~90년대 가게 일상을 회상하는 이 대표의 입가와 눈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모자부터 교복, 가방까지 까만 학생들이 하교 후에 새까맣게 몰려들어 계산하는 나를 빙 둘러싸면 그 뒤로 뭘 막 집어가 없어지는 물건도 많았지. 쫓아가서 뺐는데도 한계가 있어. 그냥 그랬던 시절이지. 또 학생들이 가게 옥상으로 올라가서 들고 뛰고 하면, 표 팔다 말고 올라가 싸리 빗자루로 내려가라고 우르르 쫓아내는 게 일상이었어. 그래도 하루가 어떻게 갈지 모를만큼 참 재밌었어. 버스도 그래. 앞문에 안내양, 뒷문에 조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안내양이랑 조수가 사람들을 앞, 뒤에서 꽉꽉 밀어 넣고, 매달려 가고, 시내버스가 부족해 관광버스를 임대해서 시내버스처럼 운영하기도 했어.”

한번은 그 시절 학생 중 한 명이 60대가 다 돼서 찾아온 적도 있다. 그는 자기가 학생 때 여기서 많이 훔쳐 먹었다며 추억을 떠올렸고, 이 대표는 웃으며 이제 다 커서 돈을 벌테니 자주 와서 많이 많이 사가라는 말로 서로의 안부를 대신했다.

여전히 시내 병원, 시장을 찾는 작은 시골 마을 어르신들의 소중한 교통수단인 버스와 50년 넘게 이어온 슈퍼 겸 터미널은 역사적으로도, 현재에도 가치 있는 공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승현 yoosh@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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