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은행대출, 기본소득이 초저출산 대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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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30대 박모 씨는 둘째 아이를 원하는 아내와 갈등을 겪고 있다.
박 씨가 둘째를 반기지 않는 건 4년 전 '영끌'로 장만한 아파트 때문이다.
박 씨처럼 집이 있어도 은행 대출이 많으면 아이를 더 낳거나 정상적 소비 생활을 하기 어렵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시작되기 전인 2005년 0.932명으로 전국 평균(1.085명)보다는 약간 낮고 부산(0.887명)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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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대출, ‘표지갈이’ 기본소득으로 해결 못해
문재인 정부에서 폭등한 집값은 청년들의 영끌 투자로 이어졌고, 우리 사회는 청년들을 부채의 늪에 빠뜨린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첫째 자녀 출산은 주택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 초등학교 사교육비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둘째 자녀 이상 출산은 주택 매매 가격, 전세 가격과 함께 고등학교 사교육비의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집값 불안은 망국병으로 불리는 저출산 위기를 부채질할 수 있다.
정부가 주거 안정을 저출산 해결의 핵심 방안으로 인식한 건 다행이지만 청년들이 가려운 데를 제대로 긁어 주지 못한다. “아이를 낳으면 돈 빌려 준다”는 식의 대출 정책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출산 가구 주거 안정 예산 9조 원의 대부분이 주택 구입이나 전세 자금을 대출해 주는 데 들어간다.
청년들이 원하는 건 집이지 대출이 아니다.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았을 때는 정부의 저금리 대출이 큰 도움이 되지만 연 소득의 15배가 넘는 서울 집값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박 씨처럼 집이 있어도 은행 대출이 많으면 아이를 더 낳거나 정상적 소비 생활을 하기 어렵다. 지난해처럼 정책대출이 집값을 다시 밀어올리기라도 하면 청년들은 더 큰 빚을 내야 한다. 선의로 내놓은 대출 지원이 출산의 장애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주거 대책의 추를 대출 지원에서 장기임대주택 등의 공급 대책으로 옮겨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출생기본소득’은 대선 공약인 기본소득을 ‘저출생’ 대책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세금으로 나눠주는 기본소득 역시 공짜는 아니다. 아이들이 커서 갚아야 할 나랏빚으로 쌓인다. 출생아가 늘어날수록 국가 재정 부담이 증가하는 구조여서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 대표는 “재원이야 앞으로 마련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덮어놓고 시작부터 하자는 건 그 빚을 갚아야 할 미래 세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도시화율이 높은 아시아 유교문화권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과제다. 경쟁적 문화에서 교육을 오래 받을수록 더 나은 보수를 받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도 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은 늦어진다. 일자리는 빠듯하고 집값은 껑충 뛰어 양육 비용은 불어나고 있는데 과거처럼 자녀에게 노부모 봉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서울과 같은 대도시 청년들은 ‘출산 연기’나 ‘출산 포기’라는 나름의 합리적 선택을 한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시작되기 전인 2005년 0.932명으로 전국 평균(1.085명)보다는 약간 낮고 부산(0.887명)보다 높았다. 지난해엔 0.593명으로 전국 평균(0.778명)보다 한참 낮고 부산(0.723명)보다도 더 떨어졌다. 17년간 약 300조 원을 온 나라에 쏟아부었는데도 서울이 초저출산의 진앙이 됐다. 역대 서울시장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고, 안정된 집값과 저렴한 장기임대주택을 제공하며, 합리적 비용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편리한 양육 인프라를 마련해 줬다면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대출 진통제’와 ‘표지갈이 기본소득’으로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3대(일자리, 주거, 보육)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청년들이 이제 더 잘 안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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