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기차는 북으로 가고 있었다

김동진 2024. 2. 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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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발발 1년 뒤 북한 당국이 자랑했던 전과 ‘포로 10만 명’... 돌려보낸 국군포로 8천여 명
-북한 당국 “국군포로 더 이상 없다”했지만, 탈북한 국군포로 80명은?
-국내 생존 국군포로 10명... 한 작가의 눈을 통해 그들의 삶 재조명

■ 어디선가 들은 듯 하지만, 실제로 잘 알지 못하는 단어 ‘국군포로’.

1950년, 6.25 당시 10대 후반의 나이에 자원 또는 징집의 형태로 참전했다가 인민군 또는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혀 북한으로 끌려가 30년에서 40여년 이상 강제 노역에 동원된 뒤 탈북, 고향으로 돌아온 생존 국군포로들.

이들은 1953년 정전 이후 포로 교환을 통해 돌아온 8천여 명의 국군포로와 달리 북한 당국의 지속적인 부인과 남한 사회의 무관심 속에 뇌리에서 잊혀진 채 북한의 포로 수용소와 강제 노동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탄광 노역 등에 동원됐다.

■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고 김성태 어르신과 이대봉 어르신

남한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이유로 교화소(교도소)에 갇혀 13년 징역을 사는 등 고초를 겪고 탈북한 국군포로 고 김성태 어르신과 아오지 탄광에 끌려가 53년간 강제 노역에 동원됐던 이대봉 어르신 등, 그들은 탈북한 뒤 고국에 돌아와 한국의 번영된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왜 조국이 자신들을 잊고 데리러 오지 않았는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울분을 가진 채 살아왔다.

시사기획창 취재진은 현재 생존 국군포로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한 여성 작가의 눈을 통해, 국군포로들의 불행한 삶을 재조명 해 보고, 또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남한 출신 남성의 이야기도 북한 내부 영상을 통해 소개한다.

■ 미송환 국군포로는 없는가?

6.25 발발 1년이 지난 시점에 한국군과 유엔군 포로가 무려 10만 명에 달한다고 자랑했던 북한 당국이 6.25 종전 직후 겨우 8천여 명의 포로만을 남한으로 송환시키고 '공화국에는 국군포로가 없다' 라는 입장을 고집해 오다 국군포로 1994년 고 조창호 중위의 탈북으로 북한에 생존한 국군포로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시베리아 이송설 등 각종 의혹도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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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연출: 김동진
촬영: 이제우
영상편집: 안영아
자료조사: 황현비
조 연 출: 이정윤

방송일시: 2024년 2월 6일 화요일 밤10시 KBS1TV/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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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기자 (grandkd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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