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박사’ 93세 이상숙씨 “우리 사회, 사랑과 용서에 대한 교육 절실”

윤승민 기자 2024. 2. 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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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서 학위 받고 책 출간…일제강점기·한국전쟁 등 경험 녹여
기업인으로 성공 뒤 ‘만학’ 결심…“용서받아본 사람이 남을 잘 용서”
국내 최고령 박사 이상숙씨는 한국의 근현대를 살며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한국 사회의 분열상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며 배움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한수빈 기자

“용서받아 본 사람이 남을 더 잘 용서하게 되지 않을까요. 가정에서 용서에 대한 교육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국내 최고령 박사 학위 취득자 이상숙씨(93)는 지난 2일 서울 광진구 한 카페에서 자신이 최근 책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긍휼히 여겨주십시오>를 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92세 때인 지난해 2월 성공회대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약 1년 만에 책을 펴냈다. 석사 논문 때 쓰려고 했던 내용인데 논문에 다 담기 어려웠고, 나중에 책을 쓰자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박사 학위를 마친 직후에 ‘졸업하자마자 책을 써야 금방 쓴다’고들 했다”며 “졸업 후 바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5년간 석박사 과정을 통해 그가 배운 ‘한국 사회에 용서와 포용이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에는 그가 사업을 하면서 외국 바이어들에게 무시당했던 경험을 통해 깨달은 ‘한국인의 콤플렉스’가 언급된다. 일제강점기 때 형성된 ‘식민지 콤플렉스’가 사람들의 자존감을 낮춘 영향이 크다고 봤다.

이씨는 “한국인이 식민지 시절부터 외세에 눌려있었고, 이를 해소할 데가 없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대했다”며 “남과 비교하는 교육이 질투심을 지나치게 키운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라나면서 사과와 용서의 중요성을 잘 훈련받지 못했다. 저도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31년생인 이씨에게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은 곧 그의 삶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초등학교에 다녔고, 한국전쟁 후에는 손발을 다친 사람들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뭐라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이 (이념상) 좌우로 갈려서 미워하고 싸웠고” 또 “가난해서 유엔으로부터 원조받은 밀가루로 1년 내내 수제비를 해먹는 상황”도 겪었다. 책에도 이 같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직후 경험이 담겨 있다.

전후 완구회사 ‘소예’를 창업한 그는 수출 활로를 넓혀 30년간 운영하며 성공한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가 목격하고 경험한 한국의 갈등상은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부채감이 그를 늦은 나이에도 배움의 길로 이끌었다. 기업인 모임 때 사회학 교수들의 초청 강의를 들었는데 경제학을 전공한 그에게도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 같은 ‘사회학 공부’ 뜻을 알고 있던 딸이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유튜브 강의를 듣고 2018년 이씨를 성공회대로 이끌었다.

사업과 기업인 단체 일을 왕성하게 해오던 이씨는 모든 일을 정리할 때쯤 학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학원 입학을 결심한 뒤 <사회학개론> 등 기본서 세 권을 사다가 읽었고, 동급생들에게 과외를 받기도 했다”며 “성적이 잘 나와 동급생들이 ‘노트를 빌려달라’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국기독실업인회 부회장, 국제기독실업인회 이사 등을 역임한 이씨는 보수적인 기독교계와 가깝다. 학교의 성향과 수업의 내용이 그가 알고 믿었던 것들과는 달랐지만 “수업 시간에 논쟁했던 교수님이 쉬는 시간 후 다가와 ‘같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교수님과 학생들의 이해가 넓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미래 세대에 남기고 싶은 말은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라, 사랑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라”였다.

“돈 없으면 죽는다고들 해요. 하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당장 돈보다 ‘정도’를 지켰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어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많은 것을 사랑하다 보면 사람이 미워지고 용서와 포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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