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3일 ‘삼겹살데이’ 지켜보겠어
끊이지 않는 ‘비계 삼겹살’ 문제
최근 지방 비중이 지나치게 많은 ‘비곗덩어리 삼겹살’ 문제가 새삼 불거지며 소비자들 원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판이 커지자 정부가 삼겹살의 고기와 지방 비중에 관한 기준안까지 마련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곗덩어리를 교묘히 깔아 파는 눈속임 상술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소고기와 달리 삼겹살 등 돼지고기에는 정부 차원의 부위별 지방 판정기준조차 없는 것이 비곗덩어리 삼겹살 문제의 주요 요인으로 드러났다. 업체들로서는 ‘권고’ 차원인 정부의 지방 비중 기준안을 딱히 지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비계 삼겹살의 다른 원인인 육가공업체들의 납품 상태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정부가 강화하는 것도 급선무로 꼽힌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에서 판매한 ‘브랜드 한돈’은 물론 유명 인터넷몰과 식자재 할인마트까지 비곗덩어리 삼겹살이 대량 유통되고 있다. 정부가 설 명절을 앞두고 축산물 가공·유통업체 1만곳을 대상으로 품질관리 실태 특별점검·지도에 나섰지만, 지방이 과도한 삼겹살을 구입했다는 소비자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국내 유명 커뮤니티에는 “고기와 지방이 층을 이루는 삼겹살이라지만 ‘밑’에 몰래 비곗덩어리를 깔아서 파는 기만행위에 화가 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단속에도 ‘밑장 깔기’ 눈속임 계속
정부 지원받는 ‘한돈’도 마찬가지
백화점·마트서 떠넘긴 비계 부위
서민 주고객인 식자재마트서 유통
■ 왜 ‘비곗덩어리 삼겹살’ 반복되나
삼겹살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돼지고기 중 가장 인기 있는 부위다.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설 성수기를 맞아 대형마트들이 일제히 삼겹살 40~50% 할인행사에 들어갔지만, ‘절반이 비계’라는 글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대형마트는 이와 관련, 과지방 삼겹살은 ‘브랜드 한돈’ 등 협력업체들의 완제품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체 축산팀에서 직접 가공해 포장 판매하는 삼겹살은 고객이 육안으로 비계 비중을 확인할 수 있어 그나마 곧바로 판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진공포장 상태로 납품되는 ‘브랜드 한돈’은 뜯었다가 재포장할 수 없어 품질관리가 어렵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3월 ‘비곗덩어리 삼겹살’ 이슈 후 자체 작업장에서 버리는 폐지방(비계)이 5%가량 증가하는 등 고객 불만이 감소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4~12월 품질 불만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86%나 줄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육가공업체들은 대형마트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대형마트가 한꺼번에 삼겹살 할인 경쟁에 나설 경우 주문 물량이 폭증해 지방덩어리를 충분히 제거하지 못한 채 급하게 납품하는 상품이 더러 있다는 해명이다. 또 겨울철에는 돼지가 지방을 많이 축적하기 때문에 삼겹살에 비계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생산농가의 저지방 돼지 사육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식자재 할인마트와 유명 온라인몰에서까지 비곗덩어리 삼겹살이 대량 유통되는 점도 문제다. 비곗덩어리를 포장 아랫부분에 숨겨 온라인몰에 팔거나 잡다한 돼지고기 여러 부위를 섞어 ‘한돈’(BI·브랜드 정체성) 상표까지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한돈 상표를 쓰려면 해썹(HACCP) 인증과 자체브랜드(PB) 보유, 연 80억~200억원 이상 매출 등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 “영세업체들이 인쇄소에서 상표를 몰래 복사해다가 파는 것은 시장 전체 이미지를 훼손하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말했다. 한돈 측도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축산업계 관계자는 “한돈협회와 한돈자조금 등 독과점 육가공업체들로부터 부분육으로 삼겹살을 납품받는데 비곗덩어리를 영세업체에 떠넘기고 있다”며 “비계를 다 버리고 나면 이윤이 한 푼도 남지 않아 비계와 부산물을 보상해주지 않으면 정부 방침을 따를 수가 없다”고 말했다.
97% 차지 도매상 단계서 비계 포함
사육부터 유통까지 정부 관리 필요
■정부의 강력한 재발방지 대책 필요
업체들 간에 입장차가 첨예한 가운데 결국 이를 감독할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앞서 ‘비곗덩어리 삼겹살’ 이슈는 지난해 ‘삼겹살데이’(3월3일) 20주년을 맞아 대형마트들이 대규모 반값 할인행사에 나서면서 불거졌다.
소비자들은 삼겹살의 고기와 지방 비중에 대한 기준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0월 ‘삼겹살 품질관리 매뉴얼’을 업계에 배포했다.
매뉴얼은 ‘소포장 삼겹살은 1㎝ 이하, 오겹살은 1.5㎝ 이하’로 지방을 제거하고, 과지방 부위는 폐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미추리(삼겹살 끝 고깃덩어리) 등 상품화해서는 안 되는 부위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도 비곗덩어리 삼겹살이 시중에 유통되는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생산농가의 저지방 사료 관리부터 도소매 등 유통 단계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돼지는 도축할 때 무게 110㎏을 ‘규격돈’으로 삼고 ‘등지방 두께’에 따라 단순 등급 판정을 하고 있다.
돼지 무게가 더하거나 덜할 경우 ‘등외’ 등급을 내릴 뿐, 삼겹살 등 부위별 지방 판정기준은 따로 없다. 반면 소고기의 경우 무게와 개월수에 상관없이 부위별 지방분포율(마블링)에 따라 등급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돼지고기 유통 단계별 비율을 보면 사육농가의 생산 및 출하 단계의 경우 직매입이 94.6%(경매 5.4%)로 압도적이다. 도매 단계(도축 후)에서는 식육포장처리업체, 즉 도드람한돈 등과 같은 육가공업체들이 97.1% 비중을 차지한다. 이어 소매 단계에서 정육점(25.6%), 대형마트(19.4%), 일반음식점(18.0%), 햄·소시지 등 2차 가공(13.1%), 슈퍼마켓(9.5%)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유통된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직매입한 돼지를 육가공업체들이 대형마트, 식자재 마트, 정육점 등에 ‘부분육’(삼겹살)으로 대량 납품하는 만큼, 이런 작업 공정에서 비계가 포함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지방 돼지 사육농가를 확대하고 막대한 정부 예산을 쓰는 브랜드 육가공업체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삼겹살 품질관리를 의무·제도화할 경우 시장이 위축될 수 있어 자성 촉구와 함께 매뉴얼에 따른 권고 방침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곗덩어리 삼겹살) 문제가 계속될 경우 ‘삼진 아웃제’ 등을 통해 도축가공업체의 운영·구매 선도금 지원 등을 없앨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방 비중도 문제지만 ‘밑장 깔기’를 해놓고 매번 실수였다고 하는 데 소비자들이 분노하는 것”이라며 “사육농가부터 유통 단계까지 삼겹살 품질관리를 세분화·고도화하는 등 정부 차원의 보다 강력한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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