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엔 '공정성 확보', SBS는 '소유·경영분리' 삭제… 재허가 조건 논란
대상 62% 무더기 '조건부 재허가'
일부 매체엔 완화된 조건 제시
방송통신위원회가 2023년도 재허가 대상인 KBS와 SBS 등 34개 지상파방송사업자와 141개 방송국의 재허가를 지난달 31일 의결했다. 방통위는 재허가 대상 방송국 62%에 무더기 ‘조건부 재허가’라는 이례적인 결정을 하는 한편, 재허가 조건을 크게 완화하면서 “조건 부과 합리화”라고 취지를 밝혔는데, 방송 독립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마저 솎아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강요, 검열, 삭제로 얼룩진 최악의 재허가 심사”라고 총평했다.
방통위는 재허가 기간이 만료된 지 꼭 한 달째인 이날 회의를 열고 재허가 심사위원회 심사 결과 총점 1000점 중 700점 이상을 받은 1개 방송국엔 유효기간 5년을, 650점 이상 700점 미만 52개 방송국엔 유효기간 4년을 부여해 재허가를 의결했다. 기준 점수(650점)에 못 미친 88개 방송국은 3년 유효기간으로 조건부 재허가를 받았다. 지역MBC와 지역민방, CBS 등 종교방송과 YTN 라디오 등이 여기 포함됐다.
KBS 1TV(UHD)는 심사 총점 700.60점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KBS 2TV와 SBS DTV·UHD, MBC UHD TV도 650점을 넘겨 무난히 4년 재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방통위는 이번에 MBC UHD 재허가를 의결하면서 이례적으로 공정성 관련 재허가 조건을 부과하는 결정을 했다. 올해 말 있을 MBC DTV 등의 재허가 신청 시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공정성·객관성 확보 및 대내외 법적 소송 등 법률 관련 분쟁 관리 등 준법통제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 및 개선 방안을 포함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한 것이다. 재허가 조건은 이행하지 않을 시 재허가 취소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강제성 있는 조치다. 언론노조는 “최근 외교부-MBC 소송의 1심 판결과 같이 법적 소송으로 비화하지 않을 내부 보도 심의를 강화하고 그 계획을 올해 말 심사신청서에 제출하라는 사전 검열에 다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SBS 재허가 조건이 이전 대비 크게 달라진 점도 논란이다. 우선 2020년 재허가 조건으로 부과된 '소유와 경영분리' 문구가 사라졌다. 2020년 재허가 당시 SBS 재무건전성 부실을 초래하지 않도록 최대주주에 ‘SBS 종사자대표와의 성실 협의’ 의무를 부과했던 조건 등도 삭제됐다. 이상인 부위원장은 “불합리한 규제 등 경영간섭이 될 수 있는 재허가 조건은 삭제했다”고 설명했는데, 최근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SBS의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최소한의 견제 장치조차 남겨두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최대주주 사익추구 행위에 면죄부를 준 이번 결정은 방통위 역사에 두고두고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방통위는 그동안 재허가 권고 사항으로 부과됐던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 제고’를 재허가 조건으로 상향해 부과했다. “공정성 제고 및 취재보도 윤리 위반 방지 등을 위해 취재보도준칙, 윤리강령 등 내부규정과 관련 교육제도를 강화하여 운영하고, 내부규정을 위반한 종사자 등에 대해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라는 내용이다. 김홍일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지상파방송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상파방송사는 재허가를 단순히 정부로부터 허가권 받는 행위로 인식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공적책임을 약속하는 행위라는 걸 잊지 말고 공적책임 이행에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방통위는 이번 재허가에서 “조건 부과 합리화를 위해 정책목표를 달성한 조건 및 이미 법령 등에 의무가 부과된 사항 등은 조건에서 삭제했다”며 “그 결과, 재허가 조건은 직전 재허가 대비 57개에서 40개로 30%, 권고사항은 직전 재허가 32개에서 14개로 56%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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