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이스라엘 수교’ 움직임 보이자 고개 든 이란
WP “블링컨·빈살만, 리야드서 논의했을 가능성” 분석
이란 하메네이, 사우디 겨냥해 “이스라엘 압박” 메시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지역 안정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충돌을 자제해왔던 ‘앙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신경전이 재점화하고 있다. 사우디가 전쟁 발발로 중단됐던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논의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란은 이슬람 대의를 앞세워 사우디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불안한 중동에 또 하나의 위험 요소가 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반관영 메흐르통신은 5일(현지시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외교 고문인 카말 카라지 전 외교장관과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가 만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종식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메흐르통신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이슬람 국가들이 합심해 가자지구 주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각각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로서 오랜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은 지난해 3월 중국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이후 폐쇄했던 외교 공관을 재개관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에도 중동 긴장 완화라는 목표 아래 대화 채널을 계속 가동해왔다.
전쟁이 장기화하자 사우디와 이란의 행보가 다시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수교 논의가 미국 중재로 다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막기 위한 이란의 계획이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될 정도로 이란은 이 문제를 예민하게 여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방문해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회동했다. 블링컨 장관이 전쟁 발발 후 중동을 찾은 건 이번이 5번째다. 국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블링컨 장관이 가자지구 지원과 확전 방지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자료에 적시되진 않았지만, 블링컨 장관과 빈살만 왕세자가 전쟁 전 추진한 이스라엘과 사우디 국교 수립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메시지를 극도로 아껴왔는데, 종전 후 이스라엘과 소통할 창구를 유지하기 위한 빈살만 왕세자의 전략이라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반면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날 “이슬람 국가 정치인과 과학자, 언론인들은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각국 정부를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하메네이가 언급한 타격은 이슬람 국가와 이스라엘의 경제적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사우디를 겨냥한 메시지라는 의견이 많다.
사우디와 이란이 대리전을 펼쳤던 예멘 정계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예멘 정부는 이날 마인 압둘말리크 사이드 총리를 대통령 고문으로 강등하고, 아흐메드 아와드 빈무바라크 외교장관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알자지라 등은 빈무바라크 외교장관이 사우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인물로, 이란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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