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죽음 헛되지 않게…책임자 꼭 처벌해야”

김송이 기자 2024. 2. 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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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화가 베트남서 한국까지 직접 온 이유
베트남 이주노동자의 유족 레티화(33)가 지난 2일 숨진 남편의 영정을 들고 있다.
남편, 작년 공사장서 추락사
회사 설명 없이 보상금 제안
거절하자 반년 넘게 무소식
“죽음 내몰린 이유 알고 싶다”

“오는 설에는 남편이 베트남에 오겠다고 했다. 이번 명절은 같이 보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남편의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있던 레티화(33)가 휴대전화 속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던 남편 쿠안(사망 당시 36)이 고향 베트남에 잠깐 들어왔을 때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남편이 숨진 충북 청주에서 지난 2일 기자와 만난 레티화는 “남편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어 한국에 왔다”고 했다.

레티화의 남편은 지난해 7월6일 청주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숨졌다. 갱폼이라고 불리는 대형 거푸집을 해체하다 아파트 25층 높이에서 떨어졌다. 갱폼을 타워크레인에 매달지 않은 채 작업하다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레티화의 남편을 포함해 2명이 숨졌다. 모두 베트남 노동자였다.

남편이 숨진 지 7개월이 지났지만 레티화는 죽음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이 작업이 무서워서 15분간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관리자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고 들었다”면서 “높은 곳에서 작업할 때는 안전보호망이 있어야 하는데 보호대 하나 받은 것 없이 남편이 떨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건설 현장 미숙련자였던 남편이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업무에 투입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고 이후 회사의 대처도 문제였다. 지난해 12월까지도 원청인 동양건설산업의 사과나 설명은 없었다. 남편이 숨진 지 3주 정도 지났을 때 회사에서 남편을 관리하던 베트남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상금 1억5000만원을 줄 테니 소송 제기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레티화는 “정말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다”면서 “제안에 응하지 않자 그때부턴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남편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어선 안 되겠다’. 레티화는 이 생각으로 지난해 12월8일 직접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회사가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레티화는 “회사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한 것 아니냐”면서 “모든 관리를 원청이 하는 것이니 원청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갱폼 추락사고는 공사기간을 단축하려는 구조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레티화의 남편이 사고를 당한 직후 건설노조는 “인양장비에 갱폼을 매달기 전까진 체결볼트를 해체해선 안 되지만 원청 건설사는 공사기간 단축을 압박해 미리 볼트를 해체할 수밖에 없게끔 구조를 만든다”면서 “건설사가 무리한 속도전에 매달려 건설노동자를 죽게 한다”고 했다.

남편의 죽음은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014년 선원 취업 비자(E-10)로 한국에 들어온 남편 쿠안은 4년10개월간 바다에서 일했다. 그러다 바다 위 고된 업무에 지쳐 지역을 옮겨 미등록 상태로 일을 시작했다. 사고는 그가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는데, 당시 두 달 치 월급도 받지 못한 터였다. 레티화는 “남편이 미등록 상태로 힘들게 일하다 보니 이전에도 사장님이 기분 좋으면 월급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월급을 주지 않는 일을 겪었던 것 같다”고 했다.

레티화는 지난달 23일 회사와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그날 남편의 영정을 들고 사고 현장을 찾은 그는 그곳에 차려진 간이분향소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레티화는 “이런 아픔을 누구도 다시 겪지 않도록 명확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처벌받아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면 좋겠다”고 했다.

레티화는 아직 10세 딸과 6세 아들에게는 남편의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 저녁마다 아이들이 남편과 영상통화를 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2023년까지만 일하고 올해 설에는 자진출국을 신고한 뒤 베트남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며 “아이들은 아직 아빠가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줄만 알고 있다”고 했다.

글·사진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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