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보다 더 센 것이 장마당”…북한 경제 시장화 고착 [뉴스 투데이]
경제난에 식량·생필품 시장 의존
사경제 종사자수 국영경제 추월
밀수·삯벌이·돈장사 등 활성화
매매 금지된 주택도 거래 빈번
48% “당에 희생보다 개인 중요”
북한 경제·사회실태 인식보고서 공개를 준비해온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말이다. 통일부가 6일 최초 공개한 10년 치 탈북민 설문조사 결과에는 국영경제 중심의 경제활동을 하던 북한 주민이 사경제로 옮겨가는 추세가 뚜렷하게 관찰됐다. 고질적 경제난 속에 북 주민들은 가계소득과 식량, 생필품 등 생계유지를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이나 국가보다는 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개인주의 선호·집단주의 기피 현상이 확산하는 것도 파악됐다.
보고서는 배급은 유명무실해졌고 사경제 활동 인구가 지속 증가했다고 밝혔다. 5년 단위 시계열 변화를 보면, 사경제 전업 종사자 비중은 2000년 이전 탈북한 응답자 499명 중에서는 17.8%, 2001∼2005년 탈북한 응답자 616명 중 24.2%, 2006∼2010년 탈북한 응답자 861명 중 28%로 나타났다. 2011∼2015년 탈북한 응답자 1479명 중엔 31%로 국영 전업 종사자 비율(26.1%)을 추월했다.
북한 사경제는 ‘장마당’으로 알려진 종합시장뿐 아니라 분야와 양태도 다양해졌다. 2000년대 이전 사경제활동을 해본 응답자 절반이 장마당에서 소매장사를 했으나 갈수록 장마당 종사 비중이 줄고 다른 시장경제활동 비중이 증가했다. 밀수, ‘뙈기밭’이라 불리는 소토지, 운수, ‘삯벌이’라 불리는 사적 고용에 종사했다는 응답자 비중도 증가했다. 장마당을 경험한 사람들 대상 조사에서 장마당 매대 상인 수는 2011년 이전엔 평균 414명이었으나 2016∼2020년 탈북한 응답자 조사에서는 761명으로 추정돼 시장화 규모 진전이 엿보였다.
주택, 장마당 매대, 토지, 기업 등 비교적 소규모인 국유자산의 사유화 경향도 확대됐다. 주택은 대부분 당국 소유이기 때문에 개인 간 주택 매매는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주택을 사실상의 자기 소유라 생각하며 주택을 사고파는 일도 빈번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적인 주택 중개인까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마당 매대도 원칙적으로는 개인 간 매매가 불가능하지만 사실상 자기 소유로 여겨 자릿세를 받고 사고팔 수 있다고 보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계층 분화와 빈부 격차에 대한 인식도 심각해졌다. 2019년 탈북한 한 응답자는 “중학교 때 농촌동원을 가서 도와줬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지? 사람이 사는 게 아니고 짐승보다 못한 인생 산다고. 나는 내 지금 집에서 잘 살고 있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거든요”라고 증언했다.
시장화와 함께 개인화 경향도 뚜렷해졌다. ‘개인의 일을 하는 것이 당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문항에 전체 응답자 530명 중 48.1%가 ‘그렇다’고 답했다. 정권을 위한 희생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은 29.2%였다. 김정은 집권 전과 후도 크게 달랐다. 2011년 이전 탈북민 175명 중에서 정권보다 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은 38.3%였으나 2012년 이후 탈북민 355명 중에서는 53%로 증가했다.
통일부는 “탈북민 조사는 현지 조사가 불가능한 북한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몇 안 되는 조사방법”이라며 “다만 탈북민 조사가 여성, 접경지역, 중학교 이하 졸업자, 무직, 소득수준 중하층에 편중돼 모집단인 전체 북한 주민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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