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원장의 재조사 과정 합당한가”…진실화해위 내부 폭로

고경태 기자 2024. 2. 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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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함평 사건 팀장 내부망에 글 올려
김광동 “확인 차원” 변명…야당 위원들 규탄 성명
6일 오후 열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제72차 전체위원회에서 이상훈 상임위원(왼쪽)이 김광동 위원장에게 함평 사건 재조사에 항의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진실규명이 끝난 한국전쟁기 희생 사건에 대해 두 달간 통지를 미루다가 재조사를 지시해 유족들의 반발을 산 가운데, 해당 사건을 처음 조사했던 조사과 팀장이 “재조사가 이뤄진 과정이 합당하지 않다”는 취지의 글을 내부망에 올렸다. 진실화해위 기본법에 따르면 위원회가 의결한 사안에 대해 위원장이 재조사를 지시하거나, 결론을 뒤집을 수 없다.

진실화해위에서 문제의 함평 사건을 조사했던 조사과의 ㄱ팀장은 6일 오전 내부망(인트라넷)에 글을 올려 “전체위원회에서 의결된 사항이 위원장의 ‘의문’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지는 이런 과정이 합당한지, 해당 조사관의 과실이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조사업무를 멈추라는 지시가 합당한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ㄱ팀장은 또 “이런 지시가 조사관들의 조사 의지를 얼마나 꺾게 하는 것인지…전체위원회 의결사항마저도 정말 통과된 것이 맞는지 의문을 가져야 하는 현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썼다.

위원회는 지난해 11월28일 함평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의결했다. 하지만 김광동 위원장은 신청인에게 지체 없이 해야 할 통지를 미룬 채 재조사를 벌여왔다. 애초 이 사건을 조사한 과의 조사관이 아닌 다른 과 조사관에게 맡긴 재조사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함평 사건 희생자 13명 중 ㄴ씨가 군경에 의한 희생자가 아닌 적대세력 희생자가 아닌지 의심해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열린 제72차 전체위원회에서 “근본적 결정을 뒤집는 게 재조사다. 재조사는 전체위 의결 없이는 안 된다”면서 “이번 조치는 희생자의 생년월일, 이름, 날짜처럼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과 같은 확인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함평 사건 재조사를 지시하는 과정에 참여한 이옥남 상임위원과 황인수 조사1국장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쳤다. 이옥남 위원은 “의심나서 확인했는데 뭐가 재조사냐. (조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조치였다”고 했고, 황인수 1국장은 “(조사관의) 과를 바꾼 게 아니라 다른 과에서 조사를 지원했다”고 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은 △합의제 기구에서 9인 위원들의 의결권을 침해한 점 △11월28일 전체위 회의록에 함평 사건에 대한 추가확인 언급이 없는 점 △그동안 소위원회 등에서 함평 사건에 대한 질문에 전혀 답하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한 점 △다른 과의 조사관까지 동원한 점 △다른 유족들에게까지 2개월 동안 통지를 미룬 점 등을 들어 위법한 재조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체위원회가 끝난 뒤 “위원들의 의결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위원장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며 규탄 성명을 냈다. 이들은 “법에서 보장한 야당 추천의 위원들을 비롯하여 위원장 아닌 위원들의 심의의결권을 침해한 위법한 것”이라며 “과연 이러한 분위기에서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조사 기한 1년 연장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심각하게 우려되기 때문에 민주당 추천의 위원들은 피해자 단체들과의 협의 등을 통해 이번 사건에 강력히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1월24일 대전의 희생자 ㄴ씨 자택을 방문해 재조사했던 조사관 2명은 유족들에게 “희생자(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냐”에 초점을 맞춰 1시간 동안 물었다. 한국전쟁기 사건에서 가해 주체가 누구인지는 사건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사안으로 ‘재조사가 아니다’라는 김 위원장의 해명과 배치되는 정황이다.

글은 쓴 ㄱ팀장도 “해당 사건 1건은 매우 구체적으로 재조사가 되었고, 나머지 21건(보류 9건 포함)에 대해서도 자료조사 등이 진행되었다”며 “(먼저 조사에 참여했던) 조사관은 지시에 따라 22건 전체 자료 일체를 복사해서 재조사 담당 조사관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ㄱ팀장은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약 두 달에 걸친 재조사 끝에 오늘 오전 (함평 사건에 대해) ‘원안 그대로 결재 상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밝혔다. 군경사건 희생자를 적대세력 희생자로 의심했으나, 그 의심이 근거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이날 전체위에서 김광동 위원장은 함평 사건 재조사로 인해 신청인들에 대한 통지가 늦어진 점에 대해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진실화해위 기본법 28조는 “위원회는 진실규명 결정이 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유를 명시하여 신청인과 조사대상자·참고인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진실화해위의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이번 재조사와 관련 “위원회 조사관의 조사결과, 그리고 위원회 의결을 스스로 부인하는 이율배반이자 자가당착적 지시”라며 “위원회 합의정신 내지 일사부재리 원칙에도 반하고, 조사능력의 한계에 도달한 위원회의 행정력 낭비”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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