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삶을 얻는다는 말
18세기 문인 김양근은 서재 이름을 ‘득생헌(得生軒)’이라고 붙였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는 뜻으로도 쓰일 법하지만, 이 득생이라는 말에는 출처가 있다. 도연명은 세상을 버린 자신의 심정을 망우물(忘憂物) 즉 술에 띄워 멀리 보내며 이렇게 노래했다. “해 지고 만물의 움직임이 잦아드니/ 새들 지저귀며 숲으로 돌아오네./ 동헌 아래서 내 멋대로 휘파람 부니/ 이제야 다시 이 삶을 얻었구나.” 세속을 훌쩍 벗어난 곳에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얻었다는 뜻을 가져온 것이다.
옛 문인들은 현실에 발을 붙인 채 분주하게 살아가면서도 언젠가는 유유자적한 나만의 삶을 찾아 자연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을 입에 늘 달고 살았다. 그들이 꿈에도 그리던 모델이 바로 도연명이다. 이익과 지위를 위해 구차한 일에 휘둘리느니 궁핍하더라도 내 뜻대로 살겠다는 염원을 과감하게 실천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속세를 떠나 아무런 일도 없이 한적하게 살고 싶다는 말은 넋두리에 그치기 쉽다.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더 나아 보이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만나고 만드는 게 우리의 삶이다.
득생헌 주인 김양근 역시, 사람이 일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잘 알았다. 문제는 일과 나의 자리가 뒤바뀌는 데에 있다. 길고 짧음을 비교하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면서 욕망이 생기고 번뇌가 일어난다. 그 대상을 좇아 일에 끌려다니다 보면 나의 몸조차 나의 것이 아니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더구나 지금은 손가락만 움직이면 욕망의 대상을 무한대로 쏟아내는 스마트폰의 시대다. 멋지고 화려한 모습만 노출되는 가운데 비교우위의 기준은 끝없이 상승하고, 팽창하는 욕망을 따라 달려가 보지만 그럴수록 나의 삶은 쪼그라든다.
소동파는 일을 없애서 이 삶을 얻었다는 도연명의 말을 받아서, 일에 끌려다니면 그만큼 이 삶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일을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내가 일에 얼마나 끌려다니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건 해봄 직하다.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루가 이틀이 되니 70년을 살면 140년을 사는 셈이라고 했다. 소동파의 이 셈법으로 따진다면 나의 삶은 몇년이나 될까?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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