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짐 싸는 교민이 늘어가는 이유
“한국 사람은 세 명 귀국하면 한 명 정도 들어오는 것 같아요.”
중국 베이징 한인 밀집지역인 왕징(望京)의 부동산 중개업체 관계자 얘기다. 베이징 한인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한인 숫자는 점점 줄고, 주 고객층을 잃은 상인들도 울상이다. 상인들은 “ 한국인만 바라봐서는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실제 생업을 접고 짐을 싸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베이징의 한인 숫자가 줄기 시작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중국이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하던 시절에는 최대 10만명을 넘어섰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인 2016년까지만 해도 6만명 이상이 거주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까지는 3만~4만명, 팬데믹 기간에는 1만~2만명으로 추산했다. 한인사회에서는 현재 교민 수를 1만명 이하로 본다.
교민 감소 추이는 재외국민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재외동포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 체류 재외국민 수는 21만5964명이다. 2021년 25만6875명에서 4만명 이상이 줄었다. 외국 국적자(조선족)를 포함한 중국 내 재외동포도 210만9727명으로 2년 전 235만422명에 비해 10.24% 감소했다. 각 대륙, 국가별 재외동포 통계 중 가장 큰 감소폭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 번째 변곡점은 사드 사태였다. 한국 기업들이 철수하고, 교민들은 짐을 쌌다. 후폭풍이 잠잠해질 무렵에는 이미 미·중 갈등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부상했고, 곧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몰려왔다. 3년간의 ‘제로 코로나’를 거치며 중국 경제는 흔들렸고, 계속된 방역·통제로 중국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중국이 지난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나섰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한·중관계도 제자리걸음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국내 10대 기업의 지난해 1~3분기 대중국 매출은 5년 전에 비해 41.1%나 감소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력 감소, 중국 기업의 기술력 향상에 따른 시장 점유율 확대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치적 요인도 배제할 수 없다. 사드 사태 이후 벌어진 한·중관계의 틈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적 포지셔닝은 한·중관계 개선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경제·무역 관계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교민사회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중국 시장에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조직을 축소하거나 주재원을 줄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는 교민사회 축소로 이어진다. 중국 시장이 과거와 같은 매력을 잃은 건 사실이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는 일정한 공감대가 있다. 눈앞에 펼쳐진 14억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파티는 끝났다’고 외면하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기왕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면 정부도 기업도 대중국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무역 관계나 산업 구조 재편 같은 중·장기적 변화에 따른 문제는 당장 해결하기 힘들겠지만 한·중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형성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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