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습기살균제 피해 국가 책임’ 물은 첫 판결 울림 크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처음으로 인정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9부는 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없다’며 기각했던 1심 판결을 8년 만에 뒤집어 선고했다. 뒤늦게나마 전향적인 결정이 나온 의미가 크다.
재판부는 정부가 “이 사건 화학물질이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헌법상 국가의 책무에 따라 국민의 건강·생명·신체를 지키기 위해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은 경우도 국가배상법 제2조의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도 판단했다. 가습기살균제 화학물질에 대해 흡입독성 심사를 충분히 하지 않았음에도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반적으로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고시해놓고는 10년 가까이 방치한 게 위법이라는 것이다.
이 기간 판매사들은 ‘무독성’ 문구를 붙여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했고, 국가와 제조사를 믿은 소비자들은 독성물질에 노출됐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는 가습기살균제 미신고 사례를 포함해 1994년부터 2011년까지 2만명이 사망하고 95만명이 폐질환을 비롯한 건강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는 규모의 화학물질 참사다.
항소심은 1심 판결 후 2022년 사참위 보고서와 과학계 연구결과를 반영해 정부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원고 5인 중에서 3인에게만 300만~500만원씩의 소액 위자료를 주라고 인정하는 데 그쳤다. 특별법에 따라 기존에 받은 구제급여조정금과 지원금을 감안해 보수적으로 보는 게 과연 옳은지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하길 바란다. 2014년 피해자와 가족들이 제조업체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뒤 기업을 넘어 국가책임이라는 결론을 얻기까지 10년이나 걸린 점도 안타까울 뿐이다.
환경부는 판결문 검토 이후 상고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부끄러운 실패에 책임을 통감한다면 이번 판결을 수용하는 게 도리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 부담을 덜어 경제효과를 창출하겠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후 강화된 화학물질 규제를 지난해 완화했다. 사고가 난 다음에야 책임을 묻겠다는 식인데, 그 어떤 이익도 국민의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이번 법원 판결이 정부의 무거운 책임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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