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출 농어촌 희망가] 농촌의 미래, 만들어나가자
예측 대상을 좀 섞어서 '시군 단위 인구통계를 바탕으로 30년 후 지역 농업 성장률을 예측하라'는 문제를 던져보면 어떨까. 아마 농업경제학자 대부분은 답변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어려운 일에 더 어려운 일을 곱하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 인구는 국가별 인구에 비해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민보다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는 게 훨씬 쉬워 자연증감 분석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
인구 예측치에서 농업경제 전망까지 끌어내려면 상상력도 한껏 발휘해야 한다. 농업 성장률 기본변수인 지역 내 농업인 수와 노동생산성, 농지 규모나 재배작물 구성 등은 변동이 작지 않다. 이걸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기후변화, 농자재 수급, 농산물 수출입과 같은 변화무쌍한 요소까지 고려하다 보면 30년 후 전망치를 연구자 스스로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전망 연구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당초에 문제 자체가 잘못 설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왜 이런 억지스러운 질문을 예로 들었는가 하면 요즘 일부 농촌에서 '인구감소로 인한 농촌 소멸'을 마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주로 이런 이야기다. '농촌 인구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농사 짓는 청년은 줄어든다. 이 추세라면 20년 뒤 우리 지역 인구는 절반 이하로 감소한다. 농지는 방치되고 농업은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 농업경제가 축소되면 농촌 활력이 떨어지고 인구감소는 가속화된다. 결국 농촌은 소멸위기에 빠진다.' 제법 설득력이 있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한다.
그러나 조금만 따져봐도 상당한 비약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령화와 청년농 감소가 진행되는 건 맞는다. 하지만 여기서 농업인구 감소, 농업경제 축소와 농촌 소멸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허술하다. 농업인이 줄어든다고 곧바로 농지가 버려지고 농산물 생산이 감소하지는 않는다. 농지 소유와 이용 양상이 변하면서 토지생산성을 높이고, 결국 부가가치와 생산규모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많은 선진 농업국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걸어간 길이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사슬의 전후방 산업을 포함한 산업생태계가 농촌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농업 외에도 제조업, 상업 및 각종 서비스업 등이 섞여서 농촌 사회와 경제를 구성하고 있다. 농업경제 성장이 농촌 활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유일한 변수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농사 지을 청년이 없다는 것과 농촌에 청년이 없다는 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오늘날 농촌 거주 40세 미만 젊은이의 대다수는 농업 아닌 직업을 가진 것이 현실이다.
정말 필요한 이야기는 이렇다. 농촌에 농업과 농민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농업인구 변화 추이라는 잣대 하나로 농업경제와 농촌의 미래를 섣불리 비관하지 않도록 하자. 농업인 고령화와 청년농 감소가 농업에 위기요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농촌사회의 활력을 되찾고 이를 바탕으로 농업까지 살리는 창의적 해법 또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지금 농촌의 미래를 위해 버려야 할 것은 유행에 따라 '섣부른 비관'을 낳는 '그럴듯해 보이는 생각'이다.
고착화된 기성관념에서 벗어나 일하는 구조와 유인체계를 혁신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각 지역의 현실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분석하되, 발상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미래를 열어가는 지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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