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된 영령들이시여, 영면에 드소서 [김봉규의 사람아 사람아]
연재를 마치며
‘사람아 사람아 제노사이드의 기억’ 연재를 마치며, 지금까지 찍어 온 학살과 관련된 모든 사진을 마주했다. 한가지 부족한 것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가운데 북한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 사건은 기록하지 못한 점이다. 우익이 희생당한 것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알면서도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 나치 독일 시절 운용된 유대인 학살터를 헤매고 다니던 2020년 1월29일 폴란드 바르샤바 남쪽 마이다네크 절멸수용소에서였다. 미리 협조공문을 보내 취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해가 저물기 전 사진 찍는 작업을 마쳤다. 희생자들 유해와 화장된 잿가루가 모셔진 영묘 부근 처마 밑에서 카메라와 광각, 망원렌즈 등을 분리해 배낭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어느새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10m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쏟아졌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처럼 눈 내리는 날 가스실로 끌려가야 했던, 수용소에서 죽음을 대기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끔찍하고 무서운 상상이었다. 눈이 그칠 조짐이 전혀 없었다. 꽁꽁 싸매 배낭에 넣었던 사진기를 꺼내 죽음 앞에 절망하던 그들의 심경을 생각하며 한컷이라도 더 찍자는 마음이 일었다. 그런데 쏟아지는 눈을 찍자는 ‘나’에 맞서 찍을 필요 없다는 ‘나’가 금세 일어났다. ‘눈 내리는 것 처음 봐, 아니야 이런 정도는 의미 없어, 장비를 꺼내다 눈발이 렌즈나 촬상소자(이미지센서)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며 눈을 찍으려는 나를 억눌렀다. 그렇게 내 안의 나와 나가 한참을 치고받는 사이 내 몸뚱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고, 눈은 어느새 그치고 말았다. 고통스러운 상념 속에 절로 눈물이 나왔다.
그것은 아마도 15년 동안 이어 온 민간인학살 관련 작업에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의 신호 아니었을까. 육체의 피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시간도 모두 바닥 난 상태였다. ‘여기서 이젠 그만’이라고 주저앉고 만 것이다.
때마침 그 즈음 코로나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취재를 다니기도 어렵게 됐다. 어렵사리 열린 국내 유해발굴 현장이나 위령제를 몇차례 찾았지만, 유가족들은 마스크를 쓴 채 드문드문 멀리 떨어져 있어 사진에 뭔가를 제대로 담기 어려웠다. 그 즈음 전 세계 취재현장을 함께 한 이력이 있는 낡디 낡은 목 짧은 등산화 한켤레와도 상을 치르듯 이별을 고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학살터 현장에서 멀어졌다. 2007년 6월28일 한강인도교 폭파 희생자 첫 추모식으로 시작된 민간인학살(제노사이드) 관련한 15년 여정이 그렇게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다 이런저런 계기로 2021년 10월부터 그간 찍어온 사진들을 바탕으로 ‘사람아 사람아 제노사이드의 기억’ 문패로 이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를 위해 그간 찍어 온 민간인학살 관련 사진들을 한장씩 한장씩 들여다 봐야 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학살터와 유해발굴 현장 등을 살펴봤지만, 상대를 해치고 학살하려는 인간의 폭력성이 도대체 어디서 왜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화심리학 관련 책 등을 살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렴풋하게나마 한가지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 선사시대의 학살은 생존이 이유였다면, 20세기 학살은 이념에 의한 대립과 ‘나와 너’ ‘우리와 너희’라는 차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세계사적인 대량학살 대부분 민족, 나라, 종족, 종교 등에서 뿌리를 둔 이데올로기에서 촉발된 경우가 많았다. 하루 1만명씩 백일 동안 100만명이 학살된 르완다의 제노사이드에서는 후투족이 투치족을 바퀴벌레로 불렀고,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쥐로 비유해 선동하며 학살했다. 우리나라 또한 상대를 ‘빨갱이’ ‘미제 앞잡이’라는 이름을 붙여 100만명을 학살했던 게 불과 70~80년 전 일이다.
이번 회로 ‘사람아 사람아 제노사이드의 기억’ 연재를 마치며, 지금까지 찍어 온 학살과 관련된 모든 사진을 마주했다. 한가지 부족한 것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가운데 북한군과 좌익에 의한 학살 사건은 기록하지 못한 점이다. 우익이 희생당한 것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알면서도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까지 큰 탈 없이 학살터와 유해발굴 현장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가여운 나를 보살펴줬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오늘은 영령들께 술을 치고서 음복 한잔할 것이다. 때로는 아침신문에 조금은 불편했을 졸저의 사진과 글을 보시고 충고와 격려를 해주신 독자들께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김봉규
사진부 선임기자. 다큐멘터리 사진집 ‘분단 한국’(2011), ‘팽목항에서’(2017)를 출간했다. 제주 4·3 학살 터와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진 민간인학살 현장을 서성거렸다. 안식월 등 휴가가 발생하면 작업지역을 넓혀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비롯한 아시아, 폴란드 전역과 독일, 네덜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등 나치 시절 강제 및 절멸수용소 등을 15년 넘게 헤매고 다녔다.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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