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클락 투수에게 불리해" 틀린 말은 아니다…이유있는 걱정 vs 시대의 요구, KBO는 어떻게 설득할까

신원철 기자 2024. 2. 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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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O 10개 구단의 스프링캠프 준비물이 늘었다. 피치클락과 18인치 베이스 등 새로운 규칙에 대비하기 위한 장비가 필요해서다. ⓒ 신원철 기자
▲ 피치클락 시스템 도입은 메이저리그 경기 시간 단축에 공을 세웠다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투수들에게 불리하다."

선수들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반발한 적이 있었을까. 개막을 앞두고 인터뷰 대상이 될 만한, 이름값과 발언권을 갖춘 선수들이 피치클락과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대변혁을 앞둔 KBO는 설명자료를 배포하는 한편 향후 대면 설명회를 열어 선수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2024년 KBO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변화를 추진한다. 메이저리그가 도입한 시프트 제한, 18인치 베이스(이상 개막과 함께 도입) 피치클락(전반기 시범 운영)와 최소 세 타자 상대 규정(퓨처스리그 도입) 등이 개막과 함께 도입되거나 유예 기간을 거쳐 들어올 예정이다. ABS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아직 도입하지 않은 방식을 KBO가 선도하는 보기 드문 사례다.

▲ 한화는 스프링캠프 초반 바뀐 규칙을 소개하는 자체 설명회를 가졌다. ⓒ 한화 이글스

피치클락 세부 규정과 시행 시기 등을 놓고 진통이 있었지만 도입 자체는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10개 구단은 모두 피치클락과 18인치 베이스 등 새 규칙과 관련된 '인프라'를 스프링캠프에 두고 적응훈련에 들어갔다.

한화는 캠프 초반 선수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자체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채은성은 "올해 많은 점이 달라지는데 선수단도 캠프 기간부터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변화되는 룰에 따라 경기 중 우리 팀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루 빨리 바뀐 규정을 숙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설명회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규칙에 따라 의견이 갈리기도 하는데, ABS에 대한 반응은 그래도 긍정 반 부정 반으로 보인다.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의 기준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부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어쨌든 일관성이 생기면 심리적으로 흔들릴 일이 없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선수들도 있다. 기준이 생기면 투수나 타자나 어느 한 쪽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긍정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피치클락은 다르다. 특히 베테랑 선수들의 반감이 커 보인다. 투구를 서두르다 보면 안타나 볼넷이 많아져 경기 시간 단축은커녕 역효과가 날 거라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또 피치클락이라는 새로운 규칙이 ABS라는 낯선 스트라이크존과 동시에 들어오는 탓에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낯선 것과 낯선 것의 조합이 심리적 저항을 가중시킨다.

▲ 양현종 ⓒ곽혜미 기자
▲ 이용찬 ⓒ곽혜미 기자

"모든 투수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할 거다. 스트라이크존이 일정하지만 그동안 야구를 했던 스트라이크존보다는 당연히 작을 것이고, 피치클락도 부담을 당연히 느낄 거로 생각한다…(중략)이게 스피드업을 위한 제도인데 이게 경기 시간을 줄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내가 감히 투수 대표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든다." (KIA 타이거즈 양현종, 1월 30일)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투수들이 많이 힘들어질 것 같다. 피치클락도 피치클락이지만 스트라이크존 기계판정이 처음 해보는 거라…투수들이 많이 힘들어질 것 같다. 솔직히 모든 기록이 다 안 좋아질 것 같다. 타자들, 주자들이 유리할 것 같다. 견제 제한도 투수들에게 불리할 것 같고. 점점 야구가 투수들에게 불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NC 다이노스 이용찬, 1월 8일)

메이저리그의 사례로 두 베테랑 투수들의 우려가 단순히 낯선 것에 대한 공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 제한이 없던 2022년과 피치클락을 도입한 2023년 시즌의 타격 성저을 비교하면 양현종과 이용찬의 걱정대로 투수들의 성적이 더 나빠졌다.

그러나 '시간 단축' 측면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한 효과를 냈다. 메이저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2022년 3시간 4분, 2023년은 2시간 40분이었다.

피치클락이 투수에게 유리한 야구를 만들어 경기 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안타와 볼넷, 홈런이 늘어났는데 경기 시간은 줄어들었다. '투수들이 불리해지면 경기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가설은 메이저리그에서는 틀린 것으로 판명됐다고 볼 수 있다(단 올해 KBO리그의 경우 ABS의 영향으로 인한 변수는 남아있다).

▲ 피치클락 도입 전후 메이저리그 타격 지표. 타자 쪽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KBO리그는 지난 2년만 보면 투타 균형에 큰 변화가 없는 안정된 환경이었다. 한때 리그 전체 OPS가 0.800을 넘는 타자들의 전성시대를 버텨냈던 투수들은 이 안정기가 피치클락과 ABS로 인해 다시 불리하게 바뀔 것을 우려한다. ⓒ 신원철 기자

출루의 빈도와 경기 시간이 반드시 비례 관계를 갖지는 않는다는 의견은 이미 과거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 2016년 KBO 윈터미팅에서 야구학회 신동윤 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득점이 많은 경기가 시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메이저리그는 경기 시간이 길어져 사무국이 우려하고 있는데 그곳은 투고타저 흐름이다. '타고'가 경기 시간을 늘린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중략)메이저리그와 비교했을 때 KBO 리그의 경기당 투수 교체, 타석, 타석당 투구수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 시간은 17분 차이가 난다…(중략)타석 사이를 9초 줄이면 9분 10초, 투구 사이를 1초 줄이면 4분이 단축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역시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피치클락을 도입했다. 단순히 '경기 시간을 단축하겠다'가 아니라, '경기에 박진감을 더하겠다'를 목표로 정한 것 또한 설득력을 더했다. 혹시나 주자가 더 많이 나가게 돼 총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시간이 '촘촘하게' 채워지면 괜찮다는 식이다. 메이저리그도 KBO리그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타석 사이, 투구 사이의 '죽은 시간'을 줄이는 일이었다.

시간 단축과 박진감 있는 경기 진행은 '지루한 스포츠'라는 야구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할 결정적 해결책이자 시대의 요구다. 그러나 경기의 주인공인 선수들이 불안감 혹은 우려를 드러내는 가운데 새 규칙 도입을 강행하는 것도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KBO도 이런 현장의 불만을 받아들여 피치클락 제한 시간과 마운드 이탈 회수에 메이저리그보다 여유를 뒀다.

▲ 메이저리그에서 스피드업을 위해 도입한 피치클락.

메이저리그는 지난해 주자 없을 때 15초, 주자 있을 때 20초 안에 투구를 시작하도록 했다(마치는 시간이 아니다). KBO는 3초씩 늘어난 18초/23초다. 피치컴이라는 장비를 통해 구종을 정하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사인으로 의사를 교환하고, 벤치 사인도 더 많다는 이유에서다. 마운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도 4번으로 메이저리그보다 1번 더 많다. 4번째 견제에서 아웃을 잡지 못하면 자동 보크다(한편으로는 메이저리그에 비해 너그러운 제도가 시간 단축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몇몇 선수들의 반응을 보면 이런 제도적인 노력에도 선수들은 우려를 완전히 거두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투수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명확한데 그에 따른 효과는 명확하지 않아 생기는 우려가 아닐까. '결정했으니 따르라'가 아니라, 설득의 기술이 필요한 시기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개막을 앞두고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등 새 규칙을 집중적으로 알리며 선수들과 팬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선수들이 직접 출연한 유머러스한 영상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홈페이지 뉴스 카테고리에는 아직도 '룰 체인지'가 맨 앞에 배치됐다. 어떤 규칙이 어떻게 바뀌고, 마이너리그에서는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실험을 통해 설득력을 부여한 것이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낯선 규칙에 우려하는 팬들에게 제공하는 콘텐츠다.

KBO 또한 6일 10개 구단 선수단에 배포한 설명 자료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선수단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간략하게 안내 자료를 작성했다. 또한, 안내 자료 배포뿐만 아니라 향후 선수단 대상 대면 설명회를 통해 제도의 원활한 정착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안내자료는 KBO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2023년 규칙 개정을 소개하는 MLB.com 홈페이지. 뉴스 카테고리 맨 앞에 '룰 체인지'가 나와있다.
▲ 피치클락의 효과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비교 영상. 마이너리그 사례에서는 1분 19초 안에 5구를 던져 타석이 끝났다. 같은 시간 메이저리그의 사례에서는 같은 시간 4구째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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