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세습 불만 여론 커져"…정부, 탈북민 10년 면접결과 공개(종합)
통일부, 2013∼2022년 탈북민 6천351명 면접조사결과 비밀 해제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북한에서 김씨 일가의 세습 지배에 불만을 갖는 여론이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하는 정부의 탈북민 심층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배급망 붕괴로 식량 조달의 시장 의존도 일상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북한이탈주민 6천351명을 심층면접 조사한 결과를 분석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6일 발간했다.
그동안 탈북민 면접조사 결과는 '3급 비밀'로 분류해 비공개했는데, 이번에 비밀을 해제하고 보고서로 공개한 것이다.
"백두혈통 유지해야" 답변, 최근 탈북했을수록 낮아
비교적 최근(2016∼2020년) 북한에서 탈출한 주민 가운데 북한 거주 당시 '백두혈통 영도체계가 유지돼야 한다'고 인식했다는 비율은 29.4%에 그쳤다. 2000년 이전에 탈북한 이들이 해당 답변이 57.3%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줄어든 것이다.
'탈북 전 백두혈통 영도체계 유지에 반대하는 인식을 가졌다'는 응답도 탈북시기에 따라 '2000년 이전'은 22.7%였지만 '2016∼2020년'은 53.9%로 확대됐다.
다만 탈북 전 세습 유지에 대한 인식 조사는 2020년 심층면접 때부터 반영돼 응답자 수(n=743)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북한에 거주할 때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정당하지 않다고 여겼다는 답변도 탈북시기에 따라 '2011∼2015년' 47.9%에서 '2016∼2020년' 56.3%로 상승했다.
세습에 대한 탈북민의 불만 정도가 북한 주민 전체의 여론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탈북민의 인식 변화 양상을 볼 때 세습의 정당성에 불만을 가진 북한 주민이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백두혈통 기반 영도체계에 대한 인식의 균열이 강화되고 있다고 통일부는 진단했다.
식량의 시장 조달 비율 늘어
만성적 경제난으로 북한 당국의 무임금·무배급 '충성 페이'가 장기화하면서 식량을 시장에서 조달하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로 붕괴한 배급제는 회복되지 않아 2016∼2020년 탈북한 이들의 72.2%는 식량배급을 받은 경험이 없다고 답변했다.
공식 직장에서 노임과 식량배급 모두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2000년 이전 탈북민도 33.5%로 꽤 높았지만, 이후에도 계속 상승해 2016∼2020년 탈북민은 50.3%를 기록했다.
배급제 붕괴에도 북한에서 하루 세 끼를 먹었다는 답변은 탈북시기에 따라 '2000년 이전' 32.5%에서 '2016∼2020년' 91.9%로 많이 늘었는데, 이는 식량을 시장에서 조달하는 주민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쌀·강냉이 조달 방법은 '종합시장'(장마당)에서 구매했다는 답변이 67.7%에 달했다. 2016∼2020년 탈북민만 놓고 보면 이런 답변이 71.2%로 더욱 높았다.
응답자의 93.6%는 북한 거주 당시 '장사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형식적으로는 국영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개인이 임차하거나 수수료를 내고 운영하는 기업, 이른바 '사회주의 모자를 쓴 기업'도 대폭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2016∼2020년 탈북민은 출신 지역 국영 상점 중 개인이 운영하는 업체가 47.9%에 이른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국영 식당 중 사실상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인식된 곳은 57.5%에 달했다.
통일부는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래 핵개발에 몰두하면서 경제난·민생고가 더욱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전력 공급시간이 하루 6시간 이하인 기업 비율(30.6%→38.6%), 식량 배급 경험이 없는 탈북민 비율(62.9%→65.9%), 직장에서 노임·배급을 모두 받지 못한 탈북민 비율(40.8%→48.6%), 의사담당구역제 미인지 탈북민 비율(19.4%→39.3%) 등 여러 민생·경제의 지표가 김정은 집권 후로 악화됐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최근 하루 세 끼 식사 비율이 90%를 상회하는 등 일부 주민 후생이 개선된 현상에 관해 통일부는 이날 취재진에 "일종의 착시효과"라고 해석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김정은 정권 출범 후 민생이 더 어려워졌으며, 외관상 나아진 것은 주민이 시장으로 나가서 돈을 벌고 소규모 경작지를 일구는 등 주민들이 만들어낸 변화"라고 강조했다.
외국 영상물 시청 응답 늘어…중국 영화·드라마가 1위
북한 거주 당시 외국 영상물을 시청했다는 응답은 탈북시기별로 2000년 이전에 8.4%에 그쳤으나 2016∼2020년에는 83.3%로 확대됐다. 주로 본 영상물은 '중국 영화·드라마'가 71.8%로 가장 많고 '한국 영화·드라마'가 23.1%로 뒤를 이었다.
시장화와 외부정보 유입에 맞서 김정은 정권의 통제는 강화되는 양상이다.
탈북 전 3∼4년간 사회 감시·통제 정도에 관해 2011년 이전 탈북민은 50.7%가 강화됐다고 응답했는데, 2012년 이후 탈북민은 같은 응답이 71.5%로 뛰었다.
거주지에서 감시·가택 수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비율도 2000년 이전 탈북민은 16.4%였지만 2016∼2020년 탈북민은 51.3%로 급증했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통일부의 심층면접에 응한 탈북민 중 81.8% 여성이며, 접경지역 출신이 82.1%를 차지했다. 평양 출신은 전체의 2.7%에 그쳤다. 연령대는 20대가 27.9%로 가장 많고 30·40대가 각각 26.9%였다. 50대는 17.7%다.
이번 보고서는 2020년까지 북한에서 탈출한 주민의 증언을 분석한 것으로 북한이 코로나19로 국경을 봉쇄하고 통제를 강화한 이후 상황은 반영되지 않았다.
최근 북한 당국이 시장 내 외국환 사용을 금지해 북한 원화 사용이 다시 증가하는 등 코로나19 전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증언과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016년 이후 급격하게 북한이 변하는 모습,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영향,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황은 이번 보고서에 담지 못했다"며 "내년 심층조사 사업을 수행할 때 그러한 점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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