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단체 설 후 “총파업” vs 정부 “엄정 대응”… 의대 증원 ‘전운’[종합]
정부, 불법행위에 강경대응 기조 공식화…업무개시명령 준비
국민 부정적 여론에 “파업 명분 약하다” 평가도…정부는 ‘필수의료 강화’ 당근책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정부가 6일 오는 2025학년도 입시에서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연간 의대 정원(3058명) 수를 60% 넘게 더 뽑겠다는 의지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들은 ‘총파업’을 내걸었다. 시점은 설 이후가 유력하다. 정부는 ‘엄정대응’과 함께 파업을 할 경우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 사이 ‘전운(戰雲)’이 짙게 드리웠다.
그동안 의사단체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증원을 강행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해왔던 터라 실제 단체행동을 벌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의사단체가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불법 행위를 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의료계 안팎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다만 당장 다가온 설 연휴에는 우려할 만한 의료대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현실적으로 당장 단체행동에 돌입하기는 쉽지 않다며 설 연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등을 구성해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총파업’ 카드 꺼내든 의협…전공의 88% “단체행동 참여”
의협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을 강력히 규탄하고 '총파업' 등 단체행동 카드를 다시금 꺼내 들었다.
의협은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의료계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할 경우 총파업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이필수 의협 회장 등 집행부는 총사퇴하고, 임시 대의원 총회 소집 등을 통해 단체행동 절차를 밟는다는 구상이다. 우선 7일 이사회를 열어 향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단체행동 시기는 설 연휴 이후에야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당장 연휴 기간에 파업에 돌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설이 끝나면 바로 비대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이날 오전 보건복지부와 마주 앉은 의료현안협의체에서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려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곧바로 퇴장했다.
의협 측 양동호 협상단장은 기자들과 만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앞두고 갑자기 의료현안협의체를 열려고 한 건 우리를 그냥 들러리로 생각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들러리를 설 순 없다”고 말했다.
의협의 단체행동은 2020년과 마찬가지로 집단 휴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의협은 ‘총파업’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의료법에 저촉되는 ‘진료 거부’이기 때문에 정부는 의료법 59조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
명령 위반 시 행정처분과 함께 형사고발될 수 있다. 지난 2020년 의료계가 단체행동을 벌였을 때 정부는 수도권 전공의 일부에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현재는 의협이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전면에 나선 상태지만, 2020년 사례를 보면 의협보다는 대학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전공의의 움직임이 단체행동의 파급력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의협은 동네의원 등 개원의 중심 단체로, 2020년 당시 집단휴진 참여율이 한 자릿수에 그쳤다.
반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주도한 전공의의 참여율은 80%에 육박하면서 의료 현장에 혼란을 빚었다. 여기에 의대생마저 국가고시를 거부하자 결국 정부는 증원 추진을 중단했었다.
대전협은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날 대전협은 수련병원 140여곳, 전공의 1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8.2%가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참여할 의사를 보였다고 밝혔다. 전체 전공의는 1만5천여명 정도다.
대전협은 오는 12일 온라인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의대 증원 등 의료현안 대응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복지부, ‘엄정 대응’ 원칙…의료계 ‘반대 명분’ 약하다는 지적도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의료개혁’으로 명명하며 강한 추진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의료계에서 불법 행위를 벌인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파업할 경우 의료 현장에 미치는 혼란이 클 것으로 보고, 파업 돌입 시 즉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을 때는 징계하겠다는 강경 대응 방침을 정했다.
실무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전공의 개개인에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까지 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이날 보정심 후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한 브리핑에서도 의료계의 불법 단체행동에 단호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료인들이 환자 곁을 지켜주시길 바란다”면서도 “만에 하나 불법적인 행동이 있다면 저희는 법에 부여된 의무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당시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가 의료계의 총파업으로 정부가 물러났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도 했다.
조 장관은 “(2020년) 그때는 코로나19 감염이 심각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 확보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해 타협한 것으로 안다”며 “지금은 의료계가 협조해주실 것으로 우선 믿고 있고, 만약에 불법적 행동이 있다면 관련법에 따라 단호히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엄정 대응 기조를 세운 가운데 의사단체의 반대 명분이 희석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동안 의협은 의대 증원에 앞서 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올리고, 의사들의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해왔다.
이에 복지부는 이달 1일 공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서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하는 데 10조원을 투자하고, 의료사고 시 의사의 형사 기소를 면제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등 의료계의 요구를 대폭 반영했다.
전공의의 연속 근무 시간을 줄이고, 의료기관을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전공의 달래기’ 대책도 내놓았다.
복지부는 그동안 의료계와 소비자·환자단체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한편, 대학들을 상대로 의대 증원 수요조사를 진행하는 등 차근차근 의대 증원의 명분을 쌓는 행보를 보였다.
의대 증원에 대한 지지 여론도 의료계로서는 부담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작년 12월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89.3%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85.6%는 ‘의협이 진료 거부 또는 집단 휴업에 나서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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