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퍼들이 가꿔온 양양 해변이 유흥지로 변해버릴까 두려워"

2024. 2. 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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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포스텍 ISDS 공동기획 
[지방 청년 실종 : 10회 끝 양양]
편집자주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 비수도권 지역을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김진수(왼쪽부터) 서프랩 대표, 최현종 양양군청 주무관, 김석기 양양청년협동조합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강원 양양군 현남면 서프랩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린다.

김진수(서프랩 대표)= 강원 양양 남애해변에서 서핑스쿨과 게스트하우스를 함께 제공하는 서프랩을 운영하고 있고, 서핑 강사가 본업이다. 2014년 이곳에 정착해 양양을 서핑의 명소로 만드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김석기(양양청년협동조합 이사장)= 양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까지 살았고, 이후 중고등학교는 강릉에서, 대학 입학하며 서울로 이주해 졸업 후 아웃도어 회사에서 15년간 광고 마케팅 일을 했다. 2015년 3월 양양으로 돌아왔다. 서울 생활에 지쳐 귀향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김 대표님과 달리 내게 양양은 해변이 아니라 산촌이다. 어성전 법수치계곡 곳곳을 돌아다니다, 계곡 트래킹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두레 사업에 참여했고, 2020년에 양양 청년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협동조합 회원은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도시에서 양양으로 이주한 사람들로 자신의 전문 분야를 활용해 양양에 정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공동 작업을 벌이고 있다.

최현종(양양군청 주무관)= 2009년도 9월 양양군청에 처음으로 발령받아 13년 차 정도 됐다. 지금은 감사 업무와 고충 민원 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다룬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 문제에 대한 기획을 관심 있게 읽었다. 양양 해변에서 과잉관광에 고통을 받는 주민들의 민원 처리도 내 업무 중 하나다.

-석기 님 성장기의 양양과 서울서 귀향 후 양양은 얼마나 많이 변했나.

석기= 크게 달라졌다. 서핑이 그 변화의 기점인 것 같다. 그래서 그 변화는 해변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산 쪽은 변한 게 거의 없다. 10여 년 전만 해도 도시 청소년들이 산촌 생활을 경험하는 ‘산촌유학센터’도 운영됐지만, 지금은 그마저 사라지고 있다. 양양 어성전부터 강릉 부연동까지 이어지는 약 20㎞의 계곡에는 오래전부터 펜션 촌이 성행했는데, 이제는 많이 없어졌다.

현종= 산촌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양양군에서는 지역 소멸 대응 기금 등을 활용하고 있다. 인제 산촌유학센터와 연계해 산과 바다를 같이 체험하는 프로그램 등을 준비 중이다.

-10년 전보다 산촌 방문객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인지? 수도권에서 접근성은 훨씬 좋아졌는데.

석기= 관광은 유행을 많이 탄다. 물론 홍보 등이 제대로 안 됐을 수도 있지만 주말에 펜션에 놀러 가는 문화가 시들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된 거 같다.

진수= 20년 정도 전에는 낙산이 가장 핫 플레이스였는데, 지금은 예전만 못하다. 낙산이 쇠락하고,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이후 서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개통 이후 수도권과 2시간 거리로 좁혀졌는데, 양양 주민들의 외지인에 대한 무뚝뚝함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현종= 양양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차츰 그런 오해가 풀렸다. 오래전부터 뿌리내린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양양만의 현상이 아니라 인근 강릉 속초도 비슷하다.

-공동체 의식이 강하면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친밀감을 느끼고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도하게 배타적으로 되면 외지인의 정착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현종= 귀농 귀촌인을 지원하려면 이들이 정착할 땅을 구해야 하는데, 기존 주민들의 배타성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청년 인구를 늘리는 문제도 주민들의 배타성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마을마다 귀농 귀촌인과 기존 주민들을 연결해 주는 리더가 꼭 필요하다.

진수= 서울에서 내려와 정착 초기 양양 주민들과 일을 하면서 “양양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읍사무소나 군청에서도 공무원이 왜 이리 무뚝뚝할까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많이 변했지만, 변화가 더딘 것도 사실이다. 양양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도 이제는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지역의 지속성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좀 더 개방적인 자세로 바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양양 청년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석기 양양청년협동조합 대표

석기= 양양에서만 살아온 청년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협동조합 직원 한 명이 30년 동안 양양에서만 살아온 토박이었는데, 대표성이 있는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 직원에게 들은 바를 전하자면 양양 출신 청년들은 물려받을 가업이 없으면 직업을 구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도시로 떠나려 하고, 머무는 이들은 일용직을 전전하며 사회와 점점 거리를 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진수= 사실상 지역 청년이 없다. 서핑 스쿨 운영 직원을 2명 고용하고 있는데, 모두 서울 사람이다. 지역 청년을 구할 수 없다. 지켜보니까 양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들은 어떻게든 도시로 가려고 애쓰고 있다.

-외지 청년뿐 아니라 양양 출신 청년을 위한 지원 정책도 시급해 보인다.

석기= 현실성 없는 청년 정책이 많다. 몇 년 전에 청년 창업 희망자 5명을 선정해 각 1,00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었다. 그런데 자격 조건이 과거 창업 경력은 없으면서, 매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창업 초보자가 지원금을 받기 위해 매장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거다. 결국 지원자가 없어 흐지부지됐다.

-양양청년협동조합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석기= 조합은 기본적으로 프로젝트 그룹이다. 저는 작가, 목수가 두 명, 일러스트레이터, 요리사 등이 조합원이다. 각자 전공에 맞는 일을 수주하는 식이다. 우선 폐서프보드를 업사이클링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사업 지원비를 받아 버려진 서프보드로 가구, 인테리어 소품, 관광기념품을 만들고 있다. 또 작년부터 양양에서 많이 나오는 식용식물 제피를 이용한 시즈닝 등 로컬 푸드도 개발해 올해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또 지역 기업들의 광고 홍보 영상 등을 제작하는 팀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지속성에 한계가 있어, 상시로 일을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고 구상 중이다.

-설립한 지 3년 됐는데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지.

석기= 크다고 생각한다. 양양 청년층 중에는 도시에서 전문직 생활을 하다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 특히 광고나 예술 등 도시와 떨어져서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막연히 귀촌했으나, 자신의 경력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농공단지나 카페 간판집 등에서 알바로 생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협동조합은 이런 사람들이 자기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

-서핑 비즈니스는 어떤가.

김진수 서프랩 대표

진수= 서핑 업계는 이미 레드오션이 됐다. 10년 전 처음 서프랩을 연 초기 이곳에서 서핑을 즐기다 정착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대개 의사 같은 전문직이었다. 나와 인연이 닿아 이주한 경우만 네 가구나 된다. 이렇게 모여든 서핑 애호가들이 현남면에 마을을 이뤘다. 양양군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도시에서 귀촌한 사람들이 마을을 이룬 경우가 우리나라에 또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핑이 유행을 타면서 초기 양양의 매력이 사라지고 있다. 우선 부동산 가격이 뛰면서 해변 상점 임대료도 급등해, 서핑용품 임대나 강습만으로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서핑보다는 유흥에 관심이 큰 사람들이 모여들고, 서핑숍은 카페나 주점에 밀려나고 있다.

-현재 양양은 1박 이상 머무는 체류 인구가 전체 거주 인구의 50%까지 늘어나 국내 1위다. 제주 서귀포보다 더 많다. 이런 체류 인구 증가가 양양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최현종 양양군 주무관

현종= 양양 내 지역들의 발전 과정을 보면 먼저 교통이 편리한 지역부터 발전이 시작돼, 그 지역 집값이 오르면 인근으로 개발이 확산하는 식이다. 원격 근무의 확대로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이 양양을 방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착하는 사례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수도권 시청에서 양양으로 전입한 동료 직원은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게 승진에는 유리하겠지만, 매일 바다를 보면서 출퇴근하는 이곳이 더 좋다”고 말한다.

-여름만 과도하게 북적거리고 겨울에는 썰렁한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진수= 사실 동해안 전체의 문제다. 서핑은 석 달 벌어서 일 년을 살아야 하는 사업이다. 짧게 보면 두 달이다. 7월 8월, 그런데 그 두 달 사이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면 일 년이 힘들어진다. 지속 가능성이 갖춰지려면 꾸준히 관광객이 찾아와야 하는데, 우리 서핑숍만 봐도 사실 직원을 1년에 석 달 이상 고용할 필요가 없다. 양양 그리고 동해안 지역 발전의 가장 큰 장애가 짧은 성수기이다. 어업이나 광업 등도 있지만, 이 지역에서 도시로 떠나려는 청년을 붙잡고 나아가 외지 청년의 유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현재 산업 구성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어떤 지역이 분명한 매력을 지닌다는 게 굉장히 어렵다. 긴 동해안에서 유독 양양이 서핑의 고장이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그런 매력을 계속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진수= 양양은 코로나19 시기가 성수기였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영향 때문이다. 2021년 공시지가 상승률 전국 1위가 양양군이었을 정도다. 그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됐다. 서핑 사업장도 100개까지 늘어났다. 10년 사이 1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임대료도 급등하며, 해변의 서핑숍이 빠르게 유흥업소로 바뀌고 있다.

석기= 저도 서핑과 유흥주점을 혼동하고 함께 묶어서 보는 행태가 늘어나는 점이 걱정이다. 서퍼들이 자연 친화적으로 가꿔온 해변들이 유흥장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양양 해변의 매력이 어느 순간 팝콘처럼 펑 터져 사라지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된다.

글 사진 정영오 논설위원 정리 변한나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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