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전횡 누가 막나”“이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이재용 ‘전부 무죄’에 학계 비판

김세훈·윤기은·오동욱·배시은 기자 2024. 2. 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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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1심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 등을 연구해온 교수들은 “앞으로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6일 학계에서는 “재판부가 ‘경영상 판단’이라는 주관적 개념을 폭넓게 인정해 범죄에 면죄부를 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전날 이 회장 등에 대한 1심 선고에서 “합병이 ‘경영상 판단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기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경영권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업상 목표가 이재용의 사익 추구와 경영상 판단이 반·반이었다고 치더라도, 왜 무죄여야 하느냐”며 “물산·건설 중심인 삼성물산이 패션 중심인 제일모직과 합치면서 ‘성장 정체 및 위기 극복을 위한 합병’이라는, 당시에도 비웃음을 받았던 이유를 무죄 논리로 인정한 건 큰 문제”라고 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도둑질을 하고 ‘경영상 판단이 있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무죄로 봐주지 않는다”며 “(재판부의) 비상식적인 판단”이라고 했다.

삼성이 ‘경영 승계를 목적으로 박근혜 정부에 뇌물을 줬다’는 사실을 인정한 기존 대법원 판결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정상적 경영상 판단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대통령에게 말을 사주고 감옥에 갔겠느냐”면서 “국민연금의 반대를 찬성으로 돌리려다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감옥에 갔다. 이걸 정상적 의사결정으로 본다는 건 사법부가 진실에 눈을 감은 것”이라고 했다. 우 교수는 “(이번 판결은) 승계를 위해 뇌물을 준 것이 주주 이익과 부합한다고 본 것”이라며 “뇌물을 줬다는 것 자체가 개인의 사익을 위한 건데, 황당한 판단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국 사법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판결”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니 ‘세습 외의 다른 의도도 있다’는 말장난을 한 것”이라고 했다.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의 홍보 전광판 모습. 한수빈 기자

‘합병이 주주 이익에 부합해 삼성물산 주주들이 피해를 본 것만은 아니다’라는 재판부의 판단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 교수는 “이재용 개인의 사익 추구와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논리적 근거가 없다”며 “법원이 ‘지배주주가 사익을 추구하면 일반 주주에게도 좋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고, 앞으로 분식회계 처벌 완화나 전문 경영인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는 등 시장에 큰 혼란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우 교수는 “총수 이익이 곧 주주 이익이라는 판단”이라며 “이런 식으로 재벌이 주주 이익을 마음대로 침해하는데 법원에서 다 봐주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판결로 재벌 지배구조가 강화될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 30년에 걸친 삼성그룹의 경영승계를 법원이 인정해준 사건이자 삼성 일가의 재산권적 정당성을 인정해준 꼴”이라고 했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재벌은 순수하게 객관적인 법적 논리가 작동하는 영역이 아닌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판결이 아닌가”라고 했다.

합병을 둘러싸고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 교수는 “형식적으로는 타당한 상태에서 합병했고, 투자자들은 그냥 손해를 본 것일 뿐이므로 손해 배상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미진한 수사가 법원의 보수적 판단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 교수는 “검찰의 수사·기소가 미진했던 부분이 있고, 애초 혐의 입증이 다소 부족한 걸 알고도 실적 때문에 강행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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