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하게 비껴간 '웡카', 이건 훌륭한 동화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딥 로이라는 배우의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한다. 인도계 케냐 배우로 1970년대부터 몸집이 작은 사람들이 필요한 영화에서 스턴트 더블과 배우로 활동해왔다. <스타워즈>에서는 이워크 중 한 명이었고 가끔 R2-D2 속에 있기도 했다. 그리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리메이크 작업을 시작했을 때 팀 버튼은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는 움파룸파 사람들 역으로 딥 로이를 데려왔다. 로이는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움파룸파 사람들을 연기했다. 영화는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는데, 백인 중심의 영화에서 비백인배우가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고용인으로 나오면 당연히 그런 말을 듣는다. 그 비판은 타당했다고 본다. 어느 정도까지는.
얼마 전에 <패딩턴> 시리즈의 폴 킹이 만든 <웡카>가 개봉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인데, 팀 버튼 리메이크의 원작이었던 멜 스튜어트 감독의 1971년 영화를 원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영화가 움파룸파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이 멜 스튜어트 영화에서 이어진다. 이 영화의 음파룸파 사람은 몸을 붉게 칠하고 머리를 초록색으로 물들인 백인 배우다. 전작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 역할을 휴 그랜트라는 스타 배우가 연기했고 몸의 크기는 CG로 줄였다는 것이다. 머리와 몸도 CG로 칠한 것 같긴 하다.
영화는 움파룸파 사람들과 윌리 웡카의 인연도 잠시 묘사한다. 웡카는 움파룸파 사람들이 사는 섬에서 카카오 열매 네 개인가를 따 왔다. 그때 카카오 열매를 지키던 로프티가 웡카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 섬을 떠난다. 영화는 로프티를 묘사할 때 휴 그랜트의 캐릭터와 장기를 활용한다. 이 영화의 로프티는 영국 지배계급처럼 말하고 그들처럼 옷을 차려입었다. 섬을 떠날 때도 모터보트를 타고 나온다. 팀 버튼의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비백인 움파룸파는 지워졌다.
그런데 이게 옳은가? 웡카와 움파룸파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럽 백인이 저지른 비유럽국가의 약탈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웡카가 겨우 카카오 열매 네 개를 훔쳤다며 농담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기본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백인과 백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가 없다. 특히 이 이야기가 초콜릿 중심으로 돌아갈 때는 더욱 그렇다. 세상에 비정치적인 음식이 어디에 있겠냐만, 초콜릿처럼 정치를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는 재료는 없다. 초콜릿의 역사는 제국주의, 인종차별, 노동착취, 자원착취의 역사이고 지금도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본다면 팀 버튼의 영화가 오히려 더 소재에 대해 정직하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 영화는 이게 백인만의 이야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웡카>는 백인만의 영화가 아니다. 꽤 많은 흑인 배우들이 등장한다. (아시아 배우들 몇 명도 잠깐 나오는데 다들 단역이거나 엑스트라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이 영화의 배경이 소버린이라는 화폐 단위를 쓰는 가상의 국가이고 이 세계에서는 수상쩍을 정도로 인종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시대는 20세기 초반으로 보이고 계급차별, 정교유착, 가난혐오 같은 건 있는데 인종차별은 없다. 지구 역사에 그런 나라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원작자 로알드 달은 아무리 환상적인 이야기를 써도 언제나 현실세계와의 접점을 두었다.
물론 그런 동화 속 세계를 상상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영화는 <패딩턴>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인종을 떠나 캐스팅이 준수한 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대물의 비중이 큰 영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백인 배우들은 백인 배우들이 당연히 얻는 기회를 자주 놓친다고 들었다. 컬러 블라인딩 캐스팅에는 여러 이유가 있고 이걸 여기서 다 건드릴 수는 없다.
그래도 이것만은 이야기하고 싶다.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한 초콜릿 소재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흑인 배우들이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영화인데 이게 현실 역사의 인종차별과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건 너무나도 이상하다. 영화가 초콜릿을 경제 논리에서 초월한 마법의 재료처럼 그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웡카>가 이용하는 정치적 공정성의 도구는 현실세계의 불편함을 모두 지우고 모든 것들을 안전하게 만든다. 나는 이 모든 게 비겁하고 부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훌륭한 동화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웡카'스틸컷]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과도하게 소비된 오은영 박사, 하나 마나 솔루션을 어찌할꼬(‘오은영 리포트’) - 엔터미디어
- 왜 백종원은 미션에 실패해도 박수받는 걸까(‘장사천재 백사장2’) - 엔터미디어
- ‘닥터슬럼프’ 박형식·박신혜, 위로와 응원이 더 필요한 우리 시대의 사랑 - 엔터미디어
- 바둑이라 더 흥미로워진 조정석과 신세경의 대결 혹은 애증(‘세작’) - 엔터미디어
- 잘 나가다 암초 만난 김동준, 과거 최수종 연기에 답이 있다(‘고려거란전쟁’) - 엔터미디어
- 이하늬의 파트너 이종원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회수하며(‘밤에 피는 꽃’) - 엔터미디어
- 이토록 과감하고 발칙한 19금 드라마가 있었던가(‘LTNS’) - 엔터미디어
- 매사 투덜대는 백일섭에게 삐딱하던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아빠하고 나하고’) - 엔터미디어
- ‘경성크리처’·‘외계+인’ 죽 쑤는 사이 ‘이재, 곧 죽습니다’ 방방 뜬 이유 - 엔터미디어
- 검사나 천하장사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걸 해낸 장동윤(‘모래에도 꽃이 핀다’) - 엔터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