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국가 배상책임 첫 인정... "안전한 듯 방치해 피해 키워"

박준규 2024. 2. 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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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다치거나 사망한 피해자에게, 생산·유통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유독 물질의 유해성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공표했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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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원고 패소 판결한 1심 뒤집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및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다치거나 사망한 피해자에게, 생산·유통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유독 물질의 유해성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공표했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성지용)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모씨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6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김씨 등은 2014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0~201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질환 환자가 늘어났는데도 신속하게 역학조사를 하지 않았고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질병 치료·예방에 쓰이지만 인체에 약하게 작용하거나 직접 작용하지 않는 제품)으로 관리하지 않았고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 살균제 원료의 유해성을 면밀히 심사하지 않은 채 유독성이 없는 것으로 공표했다는 이유였다. 원고들은 옥시싹싹 등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폐질환 등을 앓아 사망한 사람의 유족이거나 치료를 받은 당사자였다.

1심은 이들의 청구를 물리쳤다. 원인 미상의 폐질환 확산은 '감염병이 발생하여 유행할 우려'에 해당하지 않아 국가가 역학조사를 실시할 의무가 없었고, 가습기 살균제는 청소 목적으로 출시된 것이라 의약외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유해성 심사·공표 문제에 대해서도 당시 법령에 따른 것이라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사건을 이어받은 항소심 재판부는 우선, 유해성 심사를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PGH 등은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0년대 초) 환경부 판정은 해당 물질이 음식물 포장재 등 용도로 사용되면 유해성이 낮으므로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판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어 "살균제의 화학 물질이 심사된 용도 외로 사용되는 경우에 관한 심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물질 독성이 충분히 검증된 것도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제대로 된 검증 과정 없이 유해하지 않다고 공표한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충분하게 유해성을 심사하지 않았는데도 안전한 것처럼 성급하게 결과를 고시했고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한 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불충분한 유해성 심사와 고시 등을 이용한 살균제의 제조·유통이 국민의 건강에 미친 영향이 상당히 컸다"고 강조했다. 정부 발표를 토대로 살균제 화학 물질이 규제 사각지대에서 수입·유통됐고, '무독성' 등의 표현으로 판매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 5명 중 3명에게만 300만~500만 원의 배상금을 줘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에 따라 국가로부터 위자료에 상응하는 보상(구제급여조정금)을 지급받은 김모씨 등 2명에는 배상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들은 선고 직후 취재진을 만나 "위자료를 불인정한 대목은 타당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정부는 상고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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