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내가 왔어! 기억하겠니?…사진가 강재훈 에세이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출간
이웃한 두 나무가 서로 닿지 않을 만한 공간을 유지하며 자라는 현상을 ‘수관기피(樹冠忌避)’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용어는 아니지만, 삭막한 표현은 아닐는지. 영어로 된 숙어는 꽤 근사하다. ‘부끄러워하는 우듬지(나무의 윗부분 나뭇가지)’라고 해석될 수 있는 ‘크라운 샤이니스(crown shyness)’다. 서로 가까이하기 부끄러워서 생긴 현상이라니. 그래서 산림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부부 나무’ 혹은 ‘혼인수’라 부른다. 나무를 사진에 담는 사진가는 뭐라 부를까?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한겨레)이라는 제목의 사진 에세이를 쓴 강재훈 작가는 ‘우리’라고 적는다.
“얘들아, 내가 왔어. 기억하겠니?”
21년 후의 첫 만남이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었던 경남 하동 악양면 평사리에 있던 두 그루의 소나무. 설렜고 반가웠지만,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이유가 뭘까? 사진가는 생각했다.
‘내 눈과 마음이 속세에 너무 닳아 버린 건 아닐까?’
그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말이 있었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 죽은 물고기는 강물에 떠내려간다.’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고 사진가는 말했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면 산에는 나무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곳에서 그를 묵묵히 반겨주는 나무. 그이는 나무를 친구로 생각한다. 말을 건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아니다. 강재훈은 ‘사진을 찍는다’라고 적지 않고 ‘그린다’라고 에세이에 쓴다. 사실 나도 사진을 ‘찍는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폭력적인 어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리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진가 강재훈은 그렇게 쓴다. 그런데 그 표현이 그의 사진과 어울린다.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은 시간의 아련함이 묻어 있기에. 그의 사진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30년 이상 사진기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무와 꽃과 산을 공부하며 쓴 그의 글과 사진에는 에세이라는 형식에 어울릴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이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어부가 청새치와 군함새와 뭉개 구름에 말을 걸듯이, 나무에게 말한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진으로 남기는 게 기분 나쁘면 말해도 돼! 그러면 찍지 않을게.”
나무도 그에게 말한다.
“내일은 더 괜찮아질 거야!”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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