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위협, 국가는 예견 가능했다"…책임 물은 법원(종합)
"법에 따라 유해성 심사하더라도 '흡입독성' 더 확인했어야" 지적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유해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6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환경부가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환경시민단체는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배상 범위가 제한돼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서울고법 민사9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앞서 1심은 '공무원이 당시 시행 중인 법을 따랐으므로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가 있다고 할 수 없다'라는 논리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이날 판결 후 "판결문을 검토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와 관련해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은 2003년 당시 유해물질관리법(현재 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 따라 유해성 심사를 실시해 '급성경구독성이 낮고 피부·눈에 자극·부식성이 있거나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물질도 아니며 돌연변이를 유발할 물질도 아니다'라는 이유로 유독물이나 관찰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당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판정이었지만 '흡입독성'에 대해 더 유의해 판단하는 '적극행정'이 필요했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조사에서 PGH 유해성 심사를 신청한 업체가 신청서에 물질 '배출경로'에 '제품에 첨가(스프레이 또는 에어로졸 제품 등)'라고 명시한 점이 드러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국립환경과학원이 흡입독성을 검토했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사참위 의뢰로 조사를 벌인 강원대 산학협력단은 2019년 보고서에서 "환경에 배출되는 경로와 인체 노출경로가 같은 말은 아니나 '스프레이 또는 에어로졸 제품에 첨가'라고 명시돼 PGH는 분무형태로 환경에 비산·배출될 것이고 (첨가된) 제품 사용과정에서 배출된다면 인체에 노출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환경부는 (스프레이 또는 에어로졸 제품 첨가가) 작업장에서 향균 처리할 때 쓰인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이 주장을 따라도 작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경구·경핍·흡입 형태로 PGH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2심 재판부 판단도 그간의 지적과 결을 같이 한다.
재판부는 "(환경부는) 화학물질(PGH와 PHMG)이 음식물 포장재 등의 용도로 사용될 것을 전제로 유해성이 낮고 환경에 미칠 영향이 적으므로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심사·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화학물질이 심사된 용도 외 용도로 사용되거나 최종제품에 다량 첨가된 경우는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물질 자체의 유해성이 충분히 심사·평가되거나 안전성이 검증된 것도 아닌데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 물질이라고 일반화해 공표했다"라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환경부는 화학물질이 용도 및 사용방법에 관한 아무런 제한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면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날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을 들어 이 법에 따라 구제급여를 지급받은 경우에는 별도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없다고 봤다.
지난달 31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신청한 사람은 7천901명,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5천667명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날 법원 판결은 국가에 배상 책임을 물어 큰 의미가 있지만 배상 대상을 일부 피해자로 한정했고 배상액도 소액이어서 한계가 있다"라면서 "대법원에서 배상 대상을 제한하지 않고 제대로 된 위자료를 지급하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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