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넘어졌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4. 2. 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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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난소암 고위험군 이야기 3편

12월 19일 골반강 MRI 검사 날이다. 오후 7시 20분 검사인데 오후 1시 반 이후로는 금식이었다. 시간상 퇴근 후에 병원에 가도 될 것 같았는데, 맘을 좀 더 편히 가지려고 오후 휴가를 냈다. 긴장했는지 이날도 병원에 일찍 도착했다. 신장 환자의 경우, 간혹 간호사들이 조영제를 투여하면 안 되는 걸 잊는 경우가 있다는 내용을 봐서 검사실로 들어가기 전 재차 확인했다.

그런데 갑자기 간호사가 기침을 해보라고 말했다. 왜 그러지? 두어 번 억지 기침을 했다. 간호사가 말했다. "환자분, 그렇게 긴장하면 쓰러져요. 그래서 기침 한 번 해보라고 한 거예요. 편하게 생각하세요. 이 주사는 조영제 아니고 골반강 검사 하시는데 장기가 움직이면 안 되니까 약간 고정 시켜주는 주사에요. 걱정 마세요"라고 안심 시켜준다.

MRI 검사 접수증. ⓒ최은경

검사실 안에서 내 이름을 호명한다. 검사실로 가는 도중에 담당 직원이 묻는다. "MRI는 처음이세요? 몸에 금속 물질 없는 거 확인하셨죠? 통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릴 수 있으니 귀마개를 하셔야 해요." 통 안으로 들어가는 침대에 누웠다. 머리를 고정하는 틀에 몸을 끼워 맞추고 나니 한기가 느껴졌다. 얇은 일회용 환자복이라 담요 같은 게 있으면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길 잘했다. 검사 내내 춥고 떨렸는데 담요가 없었으면 계속 신경이 쓰일 뻔했다. 덕분에 조금은 편안하게 검사할 수 있었다.

검사가 시작되었고 통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움직이면 안 된다기에 가뜩이나 긴장한 몸에 힘이 더 들어간다.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면서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를 잡아본다. 검사 시간은 20분. 그동안 꼼짝 않고 있어야 하다니... 두근대는 심장 소리 때문에 호흡이 가빠지고, 가빠지는 호흡 때문에 몸이 흔들릴까 봐 염려스러웠다. 밝은 빛이 사방에 있는 것 같았는데 나는 처음부터 눈을 감았다.

마사지 기계처럼 머리에서부터 둥둥둥 탁탁탁 다다다다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마개를 해서인지 그렇게 시끄럽지는 않았다. 그러다 안내 음성이 들린다. "큰 소리가 납니다, 놀라지 마세요." 그렇게 놀랄 만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안내를 해주어서 고마웠다. 가끔씩 말이 달리는 것 같은 소리도 났다. 끝날 무렵,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라는 주문을 세 번 정도 따라 하면 끝.

검사 전에 덜덜 떠는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주사를 놔주던 간호사가 묻는다. "힘드셨어요?"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평일 저녁인데도 검사실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검사를 앞둔 환자들이 많았다. 부디 검사를 잘 받고 가시라는 인사를 속으로 하며 병원을 나왔다. 이제 남은 건 결과. 28일이면 이 모든 불안과 걱정의 원인을 알게 된다.

하나도 신나지 않은 크리스마스이브 내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고요하게 보냈다. 마음을 졸이며 보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평소라면 연말이고 생일을 핑계로 친정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을 텐데. 올해는 그냥 가만히 집에 있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일도 해야 하고 피곤해서 이번에는 생일 모임 없다고 말했다. 엄마는 "어쩐 일이니... 네가"라고만 할 뿐 더 묻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검사 결과를 들을 날이 가까울수록 암일 수도 있다와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수시로 고개를 내밀었다. 암일 수도 있다는 두더지를 내려 쳤을 때는 그 이후에 닥칠 일들이 암담했고,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두더지를 내려 쳤을 때는 감사한 마음만 들었다. 그렇게 그날도 표정을 달리한 여러 마리의 두더지를 잡아가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어어어!" 몸이 휘청였다. 그즈음 내린 눈으로 그늘 진 곳은 여전히 미끄러웠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다가 미끄러졌다면? 혹은 길을 가다가 미끄러질 뻔 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해?'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계속 넘어져 있을 수는 없다는 것. 다시 일어나서 가야 한다는 것. 넘어질 뻔 했다고 가던 길을 중단 하는 경우는 없다. 본인 힘으로 어려우면 하다 못해 119라도 불러서 가야 한다. 이게 인생과 뭐가 다를까. 살면서 아픈 거는 넘어진 거다. 상태에 따라 넘어질 뻔한 것일 수도 있다. 몸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이유로든 사람은 넘어지거나 넘어질 뻔 할 수 있다. 그렇다한들 그냥 가던 길 계속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건데 내가 그걸 어찌해 보겠다고 생각한 꼴이랄까. 친구에게 향하는 발걸음 걸음마다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넘어져도 가고, 넘어질 뻔 해도 간다'고 되뇌였다.

이날 만나기로 한 친구는 한 달 전에 위암 수술을 받았다. 건강검진에서 뭐가 있다고 해서 검사를 받아보니 악성이었다. 전이도 없고 발견을 잘 하지 못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그런 작은 혹이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했다. "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모르겠다"는 친구에게 그의 남편이 말했단다.

"나이 들면 기미 생기지. 그거 떼어내듯 떼어내면 되는 거야. 걱정 마."

웃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말. 아내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남편의 진심이 말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수술 후 회복 중인 친구가 말했다.

"요즘 의술 좋다야. 나도 한 달 만에 이렇게 회복될 줄 몰랐어. 수술 하고 나서는 그렇게 아프더니. 너도 미리 걱정 마. 아닐 수도 있고 맞아도 수술해서 떼어 내면 된다. 치료할 수 있는 거면 다 괜찮은 것 같아. 요즘은 의술이 좋아서 대부분 치료 되고."

'요즘 아픈'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친구가 다니는 회사는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인데 거기서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암에 걸린 경우도 많고, 암이 아니라 다른 여성 질환도 많이 안고 산다는 이야기들.

그러니 병의 원인을 따져봐야 이무 의미 없고 잘 치료 받고 회복에 신경 쓰면서 건강 관리를 잘하는 게 건강한 거라는 친구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래, 그렇지. 아직 진단도 안 나왔는데 미리 걱정할 게 뭐야.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수술 후 처음 보는 친구의 얼굴은 생각했던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다. 수술 전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수술 후 세 달까지는 먹을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못 먹는 게 많으니 오히려 식욕이 폭발한다면서도 자제력을 발휘해 가볍게 먹고 산책을 30분 정도 했다. 소화가 좀 된 뒤에 차를 마시러 갔고.

모처럼 푸근한 겨울날, 친구랑 걸으면서 이야기 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이 작은 일상이 그날따라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넘어졌다고 넘어진 채로 있지 않는 친구가 어른스러워 보였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검사 결과 들으러 가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 4편으로 이어집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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