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습기 피해자에 배상"…국가책임 첫 인정(종합)

김진아2 기자 2024. 2. 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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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급여 미지급 원고 3명에 300~500만 배상
법원 "국가가 안전성 보장한 듯한 외관 형성"
피해자 측 "국가 의무 확인해준 판결에 의미"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이정일, 송기호 변호사가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가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항소심의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한다"고 판결했다. 2024.02.06.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국가 측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사례가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판사 성지용)는 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모씨 등 5명이 낸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고, 국가가 원고 3명에게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국가공무원들이 역학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점 등 개별 공무원들의 행위에 대해 위법성을 따지기는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문제가 된 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 또 공표 과정에서 일정 부분 재량권을 행사한 것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가령 환경부 등이 충분한 유해성 심사를 거치지 않고, 관련 물질에 대해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하고 이를 수정하지 않은 것은 법을 어긴 재량권 행사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재량권 행사가 직무상 의무 위반인지 판단함에 있어 법령이 재량권을 부여한 취지, 재량권 행사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 헌법상 국가의 국민 보건 보호의무를 비롯한 국가의 책무 등도 고려돼야 한다"고 판단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화학물질 심사 단계에서 독성이나 위해성에 대한 일반적인 심사가 평가되거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환경부 등은 해당 물질을 유독 물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일반화해 공표했다"며 "국가가 안전성을 보장한 것과 같은 외관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로 인해 화학물질들이 별다른 규제 없이 수입·유통됐고, 제조사는 이를 원료로 사용해 제품을 광고하고 이를 믿은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마치 정부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처럼 외관을 형성한 것에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신고한 신고자가 7685명, 사망자는 1751명에 달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환경부 등은 해당 물질의 용도와 방법을 제한 없이 공표할 경우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국가 측 배상 책임에 대해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에 따라 동일한 사유로 구제급여를 받은 경우에는 이를 제하고 산정했다는 점도 밝혔다.

이 사건 원고 2명의 경우 관련법상 구제급여조정금 일부를 받아 위자료 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반면, 나머지 3명의 경우 이를 지급받지 않아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이정일, 송기호 변호사가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가 숨지거나 다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항소심의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한다"고 판결했다. 2024.02.06. jhope@newsis.com


김씨 등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가습기살균제를 구매 후 사용하다 폐질환 등으로 사망 또는 치료를 받아 피해를 입었다며 제조업체와 국가를 상대로 2014년 8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상대는 제품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납품업체 한빛화학, 롯데쇼핑, 하청을 받아 자체브랜드(PB) 제품을 생산한 용마산업 등이다.

1심 선고에 앞서 피해자 측과 옥시, 한빛화학, 용마산업, 롯데쇼핑 등은 조정이 성립됐고 이들 회사는 소송 당사자에서 빠졌다.

이후 제품 제조업체 세퓨와 국가 대상 소송만 남게 됐고 2016년 11월 1심은 세퓨 측이 피해자 13명에게 5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당시 1심은 피해자 측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고, 원고 중 일부가 항소를 진행하면서 2심으로 이어졌다.

항소심 재판부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면서, 이날 판결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 첫 사례로 남게 됐다.

피해자 대리를 맡은 송기호 변호사는 선고 직후 "이번 사태는 기업뿐 만이 아닌 국가 역시 범인"이라며 "오늘 선고는 국가가 단순히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돕는 등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법정 의무자로서 법적 책임을 진다는 것을 법원이 확인해 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배상 범위에 대해서는 "액수 산정에 있어서 재판부의 법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구제급여를 받은 부분을 공제한 것은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배상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잘못됐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가습살균제 사건 관련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서울고법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된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애경산업 안용찬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각각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ummingbir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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