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백이는 창룡문 담당, 어디 못가게 구워 삶아야죠"…'장안문 문지기'의 '예비 FA' 문단속 [오!쎈 기장]
[OSEN=기장, 조형래 기자] “어디 못가게 구워 삶아야죠.”
KT 위즈 고영표(33)는 스프링캠프 시작 직전, 5년 107억원의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했다. 구단 최초의 비FA 다년계약이었다. 계약 소식과 더불어 화제가 된 것은 계약 당시 구단이 배포한 보도자료 사진이었다. 고영표는 수원화성의 4대분 중 정문인 장안문 앞에서 계약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구단 공식 유튜브 채널인 ‘위즈TV’에서 “장안문 문지기할게”라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수원과 KT를 대표하는 선수라는 상징성이 부여됐고 구단과 고영표는 계약 직후 곧바로 장안문으로 달려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기록을 매 경기 달성하면서 ‘고퀄스’라는 별병이 붙었는데 이제는 ‘장안문 문지기’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KT 마운드를 지키는 ‘문지기’가 된 고영표에게 올해는 또 하나의 임무가 추가됐다. 사실상 창단부터 함께하면서 동고동락했던 엄상백(28)의 이탈을 막는 것.
고영표는 2014년 2차 1라운드로 입단했고 엄상백은 2015년 1차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1년 차이로 입단한 선후배지만 유망주 시절과 KT의 힘겨운 시기를 함께했다. 그만큼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고 진심으로 응원한다.
엄상백은 고영표의 다년계약 소식을 듣고 “제가 좋아하는 형이고 어릴 때부터 같이 운동을 했는데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기분이 좋다.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웃었다.
사실 고영표의 다년계약이 아니었으면 엄상백과 함께 FA 시장에서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영표가 잔류를 선택하면서 FA 시장에는 엄상백만 남게 됐다. 다년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올시즌이 끝나고 고영표는 물론 구창모(NC, 7년 132억원) 등이 함께 FA 시장에 나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모두 다년계약을 맺으면서 엄상백은 예비 FA 최대어로 불리게 됐다.
엄상백은 통산 276경기 32승24패 3세이브 28홀드 평균자책점 4.80의 성적을 기록했다. 데뷔 초반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등 보직이 불분명했지만 2020년 상무에 입대한 뒤 선발 투수 수업을 받으며 기량을 갈고 닦았다.
2021년 전역해 10경기 4승1패 평균자책점 4.10의 기록을 남긴 엄상백은 2022년 확실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33경기(22선발) 140⅓이닝 11승2패 평균자책점 2.95의 성적을 남겼다. 이 해 엄상백은 승률왕을 차지하며 커리어 첫 타이틀을 차지했다.
승률왕을 차지한 뒤 더 기대감을 갖고 맞이했던 2023년. 그러나 이번에는 부상에 신음했다. 지난해 팔꿈치 염증으로 시즌을 늦게 시작했고 시즌 막판에는 갈비뼈 미세골절로 정규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포스트시즌 무대에 돌아왔지만 끝내 컨디션을 되찾지 못했다.
‘예비 FA’라는 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풀타임 시즌을 보내는 것이 더 간절하다. 엄상백은 “예비 FA라는 게 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다”라면서 “작년에 초반에 부상이 있었지만 돌아온 뒤에도 이닝 페이스가 나쁘지 않았다. 규정이닝은 충분히 달성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골절이 찾아왔다”라면서 “그 당시에는 아파서 아무 것도 못했고 푹 쉬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즌 끝나고 돌아보니까 너무 아쉽더라. 더 간절해졌다. 올해는 풀타임을 목표로 하면서 안아프고 던지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150km를 던질 수 있는 파이어볼러 선발 투수가 풀타임까지 소화하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해질 수밖에 없다. ‘장안문 문지기’는 이런 엄상백을 잔류시키기 위한 문단속하려고 한다.
엄상백과 고영표는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면서 의지했고 비시즌 함께 운동을 하면서 자극제가 됐다. 엄상백은 “(고)영표 형이랑 운동하면서 회초리도 많이 맞았다”라고 웃었다. 고영표는 이에 “잘 하려면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나.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해준 말이었는데 그것을 회초리라고 표현한 것 같다”라고 웃으면서 “사실 오랜 시간 함께한 선후배인데 제가 먼저 계약을 했으니, 제가 여유를 갖고 상대방을 볼 수 있지 않나. 둘 다 FA 시장에 나갔다면 자기 할 것 바빴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전 팀에 남았으니까 상백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엄상백을 위한 마음을 계속 역설했다. 고영표는 “상백이가 힘들 때는 도움이 되는 말들도 해주고 나태해질 때는 그거에 맞게 얘기해주려고 한다. 요즘은 다 자기 것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라면서 “제가 먼저 계약을 했으니까 여유을 갖고 좌우를 좀 더 둘러볼 수 있는 입장이 됐다. 후배를 더 챙겨줄 수 있는 팀 분위기를 만들어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절친한 선배로서 엄상백을 챙기고 또 투수조장으로서 투수진의 시너지를 일으키려는 고영표의 마음가짐이다.
엄상백도 고영표의 존재가 큰 버팀목이었다. 그는 “영표 형과 함께하는 시너지가 제일 크다. 영표 형이 퀄리티스타트를 많이 하는 것은 가치를 매길 수가 없는 것이다”라면서 “영표 형도 마찬가지고 (소)형준이, (배)제성이를 보면서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지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볼넷은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나.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타구를 만들어내면 결국 풀어갈 수 있다. 영표 형도 안타를 많이 맞는 날이 있지만 그래도 항상 잘 풀어가더라. 그렇게 영표 형을 따라가다 보니까 저도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떨어지고 싶지 않다. 먼저 KT 잔류를 선언한 고영표는 ‘장안문 문지기’로서 엄상백을 단단히 붙잡아두려고 한다.
엄상백은 고영표의 ‘장안문 문지기’ 사진에 대해 “합성한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영표는 “상백이는 창룡문(수원화성의 동문)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라며 ‘창룡문 문지기’가 될 것을 주문하면서 “상백이가 어디 가지 않게 제가 잘 구워 삶아야 할 것 같다”라면서 엄상백이 다른 팀에 가지 못하게 하려는 문단속이 시작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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