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트럼프 사법전쟁`...美대법, 8일 트럼프 대선 출마자격 첫 구두변론
대선 앞두고 4개 형사사건·민사재판 줄줄이
'마녀사냥' 외치며 지지층 결집 노려
"사법 무시·과도한 권한 요구, 美민주주의 위협"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사실상 대선 후보직을 확보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본격적인 대결을 시작한 가운데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 문제에 대한 첫 변론에 들어간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내란 가담을 이유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한 데 따른 것으로, 연방 대법원의 어떤 결정도 정치적 혼란 초래 등의 리스크가 있다는 분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막오른 미 대법원 트럼프 재판
연방대법원은 8일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구두 변론을 할 예정이라고 미국 CNN 방송 등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구두 변론 후 수일 내지 수주 후 신속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주(州)의 공화당 대선 경선 투표용지에서 제외할 것을 주 정부에 명령하는 판결을 했다. 주 대법원은 1·6 의사당 폭동 사태와 관련,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란에 가담했다고 보고 반란에 가담할 경우 공직을 금지한 수정헌법 14조 3항을 적용했다. 수정헌법 14조 3항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 측 인사들이 공직을 맡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대통령 후보 자격 판단 문제에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연방대법원 변론의 핵심 중 하나는 남북전쟁 때의 이 조항이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지 여부다. 수정헌법 자체는 대통령직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수정헌법 조항이 그 자체로 적용 가능한지, 아니면 내란죄에 대한 법원 내지 의회의 사전 판결이 필요한지 여부도 쟁점이라고 CNN은 전했다.
CNN은 "콜로라도주 사건과 관련, 연방 대법원이 처음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반(反)한 결정을 내리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였으나, 역사학자와 법학자 등이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이 사건을 기각하는 새로운(novel) 판결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연방대법원이 내릴 수 있는 결정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완전한 승리 △주(州)에 트럼프 전 대통령 출마 금지 허용 △의회에 결정 넘기기 등이 있는데, 어느 경우든 리스크가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념적으로 다양한 선거법 전문가들은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 자격에 대해 결정적인 판결을 하지 않을 경우 재앙적 헌법 위기와 폭력이 조장될 우려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령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정헌법 14조 3항이 대통령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방 대법원이 이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과거 행위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종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지나치게 기술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미국 법학자들은 보고 있다. 연방항소법원 판사 출신의 마이클 매코널 스탠퍼드대 법대 교수는 "연방 대법관들은 미국 대중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에 기초해 이 사안을 결정하길 원할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연방대법원이 내란을 선동하지 않았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이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는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 데릭 뮬러 노트르담대 선거법 교수는 "그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시 마음 상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연방 대법원은 이를 피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대법원이 의회에 판단을 넘기는 방안에도 리스크가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수정헌법 14조 3항이 적용되기 전에 의회가 세부 이행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과 공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는 해당 조항이 출마는 금지하지 않고 있다고 각각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 출마 자격 문제를 의회로 넘겼을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 이겼을 때 의회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임을 막을 수 있는 리스크를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방대법원이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을 인용할 경우 콜로라도주는 물론 메인주 등 다른 주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출마가 허용된 다른 주에서의 득표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의회가 인준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나아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후보 자격 박탈은 지지자들의 폭력 사태를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클린턴 정부 및 오바마 정부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근무한 스티븐 사이먼 워싱턴대 객원교수는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트럼프의 지지층에는 중무장한 민병대그룹도 포함한다"면서 "트럼프가 선제적으로 (대선에서) 거부될 경우 일부는 의심할 여지 없이 폭력에 의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 측도 지난달 연방대법관에 제출한 의견에서 "혼란과 대소동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결정을 신속하게 기각할 것을 요구했다.
◇법정공방 주요 쟁점
트럼프 전 대통령은 91개 혐의로 형사 기소됐고, 성추행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 배상과 명예훼손 소송 등 다수의 민사 재판에도 휘말려 있다.
CNN은 "미국민들이 대선 후보가 선거 유세를 하는 동시에 각종 혐의로 법정을 빈번하게 드나드는 그동안 정치사에서 유례없었던 일을 목격하게 됐다"고 5일(현지시간) 전했다. 또한, 재판 결과와 과정이 비단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의 '운명' 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직의 권한과 한계, 미국의 입헌민주 체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6 의회 난입 독려, 2020년 대선 개입 의혹, 성 추문 입막음 돈 사건, 기밀문서 유출 등과 관련한 4개 사건에서 91개 혐의로 형사 기소됐으나 모두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그룹의 사기 대출, 성추행 및 피해자 명예훼손 등으로 민사 소송도 줄줄이 걸려있다. 또한, 11월 대선 출마 자격 문제를 놓고도 법적 판단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명예훼손 민사 재판 평결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상태다. 뉴욕남부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지난달 2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28년 전 그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한 패션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에게 명예훼손 위자료 8330만 달러(약 1112억원)를 지급하라고 평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지만, 판결이 확정되면 배상금은 그에게 적지 않은 재정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캐럴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성범죄 피해 민사소송의 2심 재판도 진행 중이라 재판 결과에 따라 재정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족기업인 트럼프그룹의 자산가치 조작 의혹에 대한 민사 재판 결과도 곧 나올 것으로 보인다. 소송을 제기한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럼프그룹에 벌금 3억7000만달러(약 5000억원)를 부과하고 뉴욕주에서 트럼프그룹의 사업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 선고는 당초 지난달 말 예정돼 있었으나 며칠 연기됐다. 사업가로서 명성을 쌓은 뉴욕주에서 사업 금지와 벌금 처분을 받으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달 4일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뒤집기 혐의 관련 재판은 무기한 연기됐다. 이번 결정은 면책특권을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주장이 연방항소법원에 계류 중인 가운데 나온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또 당시 현직 대통령으로서 재임 기간 공무상 행위에 대해서는 면책 특권이 있다며 재판부에 혐의 기각을 요청했다.
타냐 처트칸 판사는 지난해 1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각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항고를 하며 이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법정 절차를 모두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
워싱턴DC 항소법원 재판부는 지난달 9일 이에 관한 구두 변론을 들었으나 언제 결정을 내릴지는 확실치 않다. 면책특권 적용 요청이 또다시 기각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를 연방대법원까지 끌고 갈 것으로 보여 추가 지연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면한 형사 재판 중 진도가 가장 빠른 것은 성 추문 입막음 돈 사건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직전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의 과거 성관계 폭로를 막기 위해 변호인을 통해 입막음 돈을 지급한 뒤 그 비용에 관한 회사 기록을 조작한 혐의로 작년 3월 말 형사 기소됐다.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을 내달 25일로 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밀문서 유출 및 불법 보관 혐의로도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재임 기간 수백건의 기밀 문건을 담은 상자를 백악관에 보관하다 2021년 1월 20일 임기를 마친 뒤 허가 없이 문건이 든 상자 여러 개를 마러라고 저택으로 가져가 방치한 혐의로 연방법원에 기소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사가 시작되자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플로리다주에 있는 마이애미 연방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재판을 오는 5월로 잡아놨지만, 재판 시작 전에 방대한 증거 자료를 검토해야 한다는 트럼프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재판 일정이 연기될 수도 있다고 CNN은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개입 혐의로 미국 조지아주에서도 형사 기소됐지만, 재판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이 재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한 네이선 웨이드 특별검사가 패니 윌리스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검사장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 최근 드러나며 파행될 수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윌리스 검사장과 웨이드 특검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국민 세금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며 "검사장을 재판에서 배제하고 기소를 중지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상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사법 리스크가 한둘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혐의와 재판들이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런 사법 리스크를 자신이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다는 서사로 솜씨 좋게 엮어내면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을 오히려 똘똘 뭉치게 했다고 분석했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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