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녹화에서 방송까지, 윤 대통령의 ‘사흘’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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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문화권에서 3은 기분 좋은 숫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도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다.
사흘은 녹화한 대담을 고치거나, 완전히 새로 찍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이번 '사흘'은 윤 대통령이 말을 주고받으며 하는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자신감을 잃었다는 상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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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문화권에서 3은 기분 좋은 숫자다. ‘하늘, 땅, 사람의 도’를 뜻하는 수로 여겨졌다. 3은 홀수, 즉 ‘양’의 수다. 3과 3이 겹치는 삼짇날(음력 3월3일)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사흘은 ‘3일’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이를 ‘4흘’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아 문해력 논란을 빚은 일이 있다. 중국 유학의 오경 가운데 하나인 ‘예기’에서는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시간’을 사흘로 쳤다. 장례 기간이 짧아도 최소한 사흘은 넘기는 것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72시간은 ‘재난 구조의 골든 타임’으로 여겨진다. 1995년 일본 효고현 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고베 대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 때 구조자 중 생존자 비율이 나흘째 되는 날부터 급감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도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방송(KBS)과 단독 대담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4일 오후에 사전 녹화를 해놓고 ‘사흘’ 뒤인 7일에야 방송한다고 한다. 사흘은 녹화한 대담을 고치거나, 완전히 새로 찍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사전에 각본을 짜고 사후 편집이 가능한 녹화 대담은 재갈 물린 방송을 앞세워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단 것”(4일, 권칠승 수석대변인)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날의 일을 생각하면, 대통령실의 걱정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021년 8월4일 부산일보는 국민의힘에 막 입당한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한 인터뷰를 온라인 기사로 내보냈다. 윤 후보는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라며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말했다. 사실과 다른 엉뚱한 말을 한 게 그대로 실려 시끌시끌했다. 부산일보는 그날 밤, 윤 후보 쪽 요청을 받고 해당 발언 부분을 삭제했다. 삭제한 일도 뉴스가 됐다.
대통령실은 대담 녹화를 한 4일 “대통령이 준비된 멘트 없이 현장에서 그간의 생각으로 즉답했다. 종이 한장 없이 녹화에 들어갔다”고 강조했다. 지나친 강조는 감추고 싶은 것을 도리어 도드라지게 하는 법이다. 이로 미루어보면, 이번 ‘사흘’은 윤 대통령이 말을 주고받으며 하는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자신감을 잃었다는 상징일 수도 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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