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강이 만나듯 우리의 마음도 만나리

한겨레 2024. 2. 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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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양력으로 새해가 시작 된지도 한달이 지났다. 그러고 보니 음력 1월1일도 10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양력과 음력을 동시에 사용하다 보니 양력설부터 음력설까지 한 달은 ‘설날’이 아니라 ‘설월’이 되었다. 설날 어원을 찾아보니 ‘섦다’에서 나왔다는 학설도 있었다. 고어의 ‘섦다’는 ‘자중하고 근신한다’는 뜻이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자중하고 근신하면서 올 한해 동안 별일없기를 기원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그래서 한문으로는 설날을 신일(愼日. 愼 삼갈 신)이라고도 표기한 것이리라. 정월(正月)인 동시에 신월(愼月)인지라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가급적 움직이는 것 조차 삼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첫달이 무탈해야 일년내내 평안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달의 답사 역시 ‘방구석에서 상상하는 삼강답사’로 대체했다. 세 강이 만나는 곳을 생각해보니 맨 먼저 떠오르는 곳이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이다. 강물의 뱃길이 중요한 운송수단이었을 때 번화한 장터를 지키면서 오가는 길손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주막이다. 하지만 철길 찻길이 발달하면서 나루터는 기능을 잃게 되고 주막 역시 용도를 다하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 ‘마지막 주막’이라는 의미가 부각되면서 관광지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주변의 옛시장은 물론 오가던 상인과 손님들이 머물면서 이용했던 공간까지 복원한 까닭이다. 삼강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해지는 곳이다. 천(川)자가 붙은 두 냇물의 규모는 강(江)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모자랐지만 합수지점 만큼은 당당하게 강(江)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산꼭대기에도 삼강이 있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 천왕봉의 삼파수(三派水 三波水 혹은 三陀水라고도 함. 陀 비탈질 타) 구역이다. 물 한줄기 없는 산꼭대기에서 만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삼강이라 하겠다. 삼강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비였다. 천왕봉 꼭대기에 빗물이 떨어진 후 동쪽으로 흘러가면 낙동강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가면 금강이 되며 북쪽으로 흘러가면 남한강이 되었다. 눈도 마찬가지다. 겨우내 내린 눈이 쌓여서 얼음이 되었고 이듬 해 봄이 오면 녹기 시작했다. 그 녹은 물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갈 길이 달라지는 삼강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삼강을 예리한 눈으로 포착한 뒤 이를 삼파수라고 이름 붙인 이는 누굴까? 속리산에 숨어 살던 이름없는 수행자였을 것이다.

조강 일대. 경기도 김포시 애기봉에서 본 개성. 한겨레 자료 사진

바닷가에도 삼강이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거대한 삼강을 찾는다면 한강과 예성강 임진강이 만나는 조강(祖江)구역이라 하겠다. 강화도 북부해안선과 맞닿은 곳이라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선인들은 이곳을 조강이라고 불렀다. 조선의 실학자 이긍익(1736~1806)선생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는 ‘교하 서쪽에 이르러 한강은 임진강과 합하고 통진 북쪽에 이르러서는 조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다.

현재 군사적인 이유로 전체경관을 조망하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없다면 옛조상들의 시각을 통해 그 모습을 짐작할 수밖에 없겠다. 다행이도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1168~1241) 거사는 ‘조강부(祖江賦)’라는 글을 남겨 두었다. 그는 당시 수도인 개경(개성)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계양(桂陽 현재 인천시 계양구)으로 부임하는 길은 배를 타고서 조강을 건너야 한다. 강물이 너무 넓은 까닭에 검게 보였으며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 여러 강물이 모인 까닭에 파도가 심할 뿐만 아니라 소용돌이까지 쳤다고 했다.

“넓고 넓은 강물이…. 시커먼 빛 굼실굼실 보기에도 무서워라. 달리는 뭇 내를 모았으니 솥의 물이 들끓는 듯…. 바람도 없는데 물결치니 눈 같은 물결이 쾅쾅 돌에 부딪히는 모양…. 저 사공은 집채같은 물결에는 익숙해도 빙빙 도는 소용돌이를 무서워하네. (중략)”

낙동강 조강 주막. 사진 박주희 기자

조강(祖江 할아버지 강)은 ‘근본이 되는 강’ ‘시원이 되는 강’이라는 뜻이 되겠다. 그래서 선인들은 조강을 단순히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모인 보통 삼강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들딸 손자 손녀로 이어지는 것처럼 조강에서 한강 예성강 임진강이 시작되었다는 역발상까지 했던 것이다. 근거는 밀물이다. 만조 때 바닷물이 육지방향으로 밀려오면서 역류가 되어 삼강으로 다시 흘러들어 가는 광경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았다. 즉 조강에 호수처럼 바닷물과 강물이 가득차면서 거꾸로 한강 예성강 임진강의 시원(始源)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태고적부터 비록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삼강의 역류’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조강이라고 불렀던 것이 아닐까? 속리산 천왕봉에 내린 눈비가 각자 삼강을 향해 흘러가는 것을 보고서 삼파수라는 이름을 붙인 것만큼이나 경이롭다.

조강은 우리나라의 ‘근본이 되는 강’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조강은 조선의 도읍지 한강뿐만 아니라 고려의 세계무역 중심지였던 예성강 입구의 벽란도와 미래 코리아 수도의 후보지라는 교하(交河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지역. 경기도 파주시 교화읍)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이다. 신월(愼月)이 끝나고 봄기운이 퍼질 무렵 적당한 날을 골라 강화도 섬 안의 섬인 교동도 전망대로 가서 조강(祖江)을 제대로 살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 위를 푸른 용처럼 날아다니며 갑진년 청룡의 해를 장대한 스케일로 웅대하게 시작해야겠다.

글 원철 스님(불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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