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약해진 게 아니라 우리 감각 무뎌졌을 뿐”···유가족·인권운동가가 본 코로나19 그 후

김세훈 기자 2024. 2. 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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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회원들이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코로나19가 남긴 질문들, 존엄과 평등을 위한 과제 및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2.6 성동훈 기자

“정부는 유가족들이 애도를 요청하면 ‘지난 정부 탓이다’ ‘전염병에는 어쩔 수 없다’고만 합니다. 죽음은 개인의 문제고 희생자들은 운이 나빴다는 것입니다.”

2022년 코로나19로 어머니를 잃은 마민지씨가 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말했다. 마씨의 어머니는 코로나 감염 후 4개월간 중환자실에서 에크모(체외막산소공급기)를 끼고 연명하다 숨졌다. 격리해제 후 사망해 ‘코로나 사망자’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해 8월까지 집계한 코로나 사망자는 3만6000여명이다.

마씨는 “설 연휴가 다가와도 20만명이 넘는 유가족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이야기를 못한다”면서 “겨울이 올 때마다 병실이 없어 거리를 헤매다 가족을 떠나보낸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누구의 위로도 받지 못한 유가족들은 슬픔을 삭히고 사회에서 배제된 채 살아간다”고 했다.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코로나19가 남긴 질문들, 존엄과 평등을 위한 과제 및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엔데믹 이후 코로나19는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감염병이 약해진 것이 아닌, 우리의 감각이 무뎌졌을 뿐”이라며 “이윤 중심 사회에서 애도할 권리, 쉴 권리, 돌봄 받을 권리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은 “홈리스나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를 돌보는 역할을 해오던 공공병원이 코로나 이후 갑작스레 주목받았고, 공공병원은 의료공백을 피해 병원으로 몰리는 환자들을 보기 위해 기존 업무를 포기해야 했다”면서 “코로나가 끝나자 공공병원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 누적된 적자로 존폐 위기에 내몰렸지만 정부는 생색내기용 지원 외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조혜연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가는 “감염병 시기에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여전히 배부른 소리”라며 “콜센터 노동자는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콜을 받아야 했고,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동료가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서로 뒤섞여 근무해야 했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로 노동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어도 쿠팡은 가족에게 사과 한 번 하지 않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생명, 안전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약자에 대한 혐오 풍조가 심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코로나 초기 ‘우한 폐렴’이라는 명칭은 중국 교포 혐오를, 언론의 이태원 ‘게이클럽’ 집단감염 보도는 성소수자 혐오를 불러왔다”며 “바이러스 보유자라는 낙인 대신 연대가 필요했지만 정부는 숨어있는 사회적 소수자를 찾아내는 데에만 집중했다”고 했다.

이들은 오는 20일 코로나19 국내 첫 사망자의 4주기를 맞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추모 전시전을 열 계획이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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