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사유 살펴달라” 국회의원 지인 사건 재판부에 임종헌 요청 전달 인정···‘직권 없어’ 무죄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1심 법원은 임 전 차장이 국회의원 관련 민원을 일선 재판부에 전달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를 재판 개입 행위로 봤지만 임 전 차장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직권 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김현순·조승우·방윤섭)의 임 전 차장 판결을 살펴보면, 이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인 아들의 사건을 심리하던 재판부에 연락해 변론을 재개해달라고 한 것에 대해 “(임 전 차장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요구를 한 사실은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임 전 차장은 2015년 5월 문용선 당시 서울북부지법 원장과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이던 이정민 판사에게 연락해 서 의원과 관련된 요청 내용을 재판에 반영해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문 원장은 사건 담당 판사에게, 이 판사는 담당 재판부에 연락했다. 당시 서 의원의 지인 아들은 서울북부지법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었고, 서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다.
검찰은 국회 파견근무를 하던 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서 의원의 ‘벌금형 선처’ 등 민원을 전달했다고 파악했다. 이 민원에는 “피고인이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임 전 차장은 1심 재판부에 벌금형 선처를 청탁한 적은 없고, 다만 변론을 재개해 변소 기회를 더 주는 절차적 배려 방법을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민원을 최종 전달받은 해당 사건 담당 재판부 판사들 증언을 토대로 임 전 차장의 ‘재판 개입’ 행위를 인정했다. 당시 해당 사건을 심리했던 담당 판사는 법정에 나와 “문 원장이 ‘서 의원이 임 전 차장을 통해 자기 관할 지역구 어떤 사람 아들인데 좀 억울하다고 하니 재개신청을 했다 하더라. 혹시 한번 살펴보고 재개사유가 있는지 봐 달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해당 증언이 일관되고 제반 정황에도 부합해 책임을 축소·회피하려고만 애쓰는 문 원장의 증언보다 신빙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 요구에 따라 민원을 전달한 사람(문 원장)과 전달받은 사람(담당 판사)의 법정 증언이 배치됐지만, 후자의 증언이 더 믿을 만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공소사실에 기재된 임 전 차장의 행위는 모두 본질이 재판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사법행정권자가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직권 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임 전 차장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른바 ‘권한 없이 남용 없다’는 논리가 국회의원 재판 개입 사건에서도 무죄 근거로 활용된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는 이날 논평을 내고 “1심 법원은 지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판결의 논리를 답습해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재판개입에 관한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임 전 차장의 재판 및 소송개입 행위에 대해 직권남용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형식적 법리해석과 적용으로 수많은 범죄행위에 대해 직권남용죄 성립을 부정한 1심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서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당시 국회 파견 판사에게 재판과 관련된 부탁 자체를 한 적이 없다”며 “국회 파견 판사를 불러 민원을 전달했다고 검찰이 공소장에 특정한 날짜(2015년 5월18일)에는 광주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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