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국가도 범인”···피해자들 “국가 책임 묻는 소송 추가 제기할 것”
서울고등법원은 6일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유해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이날 서울고법 민사9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앞서 1심은 ‘공무원이 당시 시행 중인 법을 따랐으므로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가 있다고 할 수 없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심 판결 직후 피해자로 구성된 가습기살균제참사국가책임소송단과 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환경연합 등은 서울 서초구 법원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이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환영했다. 이어 “다만 배상 대상을 일부 피해자로 한정했고, 배상액도 소액이어서 큰 한계를 갖는다”며 “ 앞으로 대법원에서 이 부분이 바로 잡혀 배상 대상을 제한하지 말고, 제대로된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하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세퓨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 10명은 2014년 국가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016년 1심에서 법원은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만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애초 지난달 25일을 선고기일로 잡았다가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마지막까지 신중히 검토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선고를 이달 6일로 연기했다.
이날 2심 판결에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활동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참위는 2018년 12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등 10여개 정부 부처들의 책임을 조사했다. 2심 재판부에 ‘환경부가 PGH,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 물질 관리에 소홀했다’는 보고서’도 제출했다.
사참위가 세퓨뿐 아니라 옥시레킷벤키저, 애경산업 등 다른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국가 책임도 조사한만큼 앞으로 관련 소송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 소송을 통해 국가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의 아버지 A씨는 “2010년말 구입해서 사용한 세퓨 제품에는 PGH 성분뿐 아니라 SK케미칼이 만든 PHMG 성분도 같이 사용된 것으로 사참위가 확인한 바 있다”며 “앞으로 SK케미칼에도 책임을 묻는 민·형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날 2심 판결문 검토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한 후에도 환경부는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환경부 환경산업기술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정부에 피해 접수를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7901명이며, 이 가운데 1847명이 사망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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