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이공계 인재 의대 쏠림 우려 커져…대책은 있나
정부가 내년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과학기술계가 덩달아 긴장하고 있다. 기존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이공계 이탈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이야기다. 안정적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정부는 2025학년도 전국 의대 입학 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 규모가 늘어난 것은 2006년 이후 19년 만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과학기술계 인력 수급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의대 열풍'은 이미 입시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의대 진학을 위해 최상위권 학생들의 재수나 학사과정 이탈이 이어지면서다.
최근 종로학원은 서울 주요 대학의 '자연계열' 내 무전공 학과들에서 중도탈락률이 특히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연세대 융합과학공학부(ISE) 중도탈락률은 15.6%로 전체 평균의 5배에 달했으며 성균관대 공학계열은 12.4%, 자연과학계열 14.2%로 역시 학교 평균을 상회했다.
중도탈락률은 전체 재적 학생 대비 중도탈락자의 규모로 미등록, 미복학, 자퇴 등으로 학업을 다 마치지 않고 탈락한 학생의 비율을 의미한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나 반수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기존 이공계 학생들의 이탈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종로학원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험생 2025명 중 47.7%는 '의대 정원 확대가 재수
에 유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40.4%는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재수하겠다'고 말했다.
● 예비 이공계생 발길 돌려야…"지역의대 중심 확대·의사과학자 활성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유관부처 관계자들은 의대 정원 확대가 촉발할 '이공계 위기'를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 단기적인 정책으로는 학생들의 의대 선호 경향을 해소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장기적으로 이공계 인력의 처우와 사회적 위상을 제고할 방법을 다각도에서 살필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신진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공계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연구기관의 처우를 개선하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결국 인재 유입으로 이어지지 않겠나"고 말했다.
'의대 블랙홀'에 대한 당장의 방편으로는 지방 의대를 중심으로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수도권 거주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이 의대 선호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구체적으로 지역인재전형의 확대가 거론된다. 의대 지역인재전형은 비수도권 지역에 있는 중학교를 입학해 졸업하고 지방 의대가 소재한 지역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한 학생에 한해 지원할 수 있다. 지방에 연고가 없는 수도권 최상위권 학생들이 전형에 응시할 수 없는 만큼 서울 주요 대학의 이공계 진학률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의대 정원 확대로 늘어난 의사 인력을 연구현장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적극적인 의사과학자 양성 정책을 통해 과학기술계에 기여할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는 주이다.
● 의사과학자 산실 원하는 '과기원 의대'…설립 빨라도 '2년 뒤'
의사과학자 활성화는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임상의사 폭증, 이공계 인재 고갈의 해결책으로 여겨진다.
앞서 국내 과학기술원들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의대 유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각 과기원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초기에는 50명 정도 규모로 시작해 점차 그 규모를 늘려나가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임상의사가 아닌 연구활동에 집중할 인재 육성이 최우선 목표라는 점에서 일반 의대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의대 정원 확대가 확정된 내년 입시부터 당장 과기원에 의대가 신설되진 않는다. 새로운 의대가 설립 인가와 평가 인증을 받는 행정적 절차를 거치는 데 약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보다 앞서 각 의대에 정원을 분배하기 위한 유관부처 간 협의도 이뤄져야 한다. 과기원에 의대가 설립될 경우 기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아닌 과기정통부가 정원 분배를 주도하게 될 수도 있다. 각 부처의 역할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더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최단 시간에 절차를 밟으면 2026년 설립이 가능하다"며 "KAIST의 경우 당초 계획대로 2026년 설립을 목표로 계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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