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 1년만에 의대증원 발표…의료계 접촉 넓히고 비의료인 참여

김병규 2024. 2. 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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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교육·노동개혁 부진 속 '의료개혁' 성과 주목
다양한 의료계 만나고, 의료소비자 의견 수렴…장시간 '빌드업'
야권·노동계·시민단체 공감 끌어내…'동력'은 압도적 찬성 여론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지난 6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2024.2.5 kjhpress@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정부가 2025년도 대학 입시의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하면서 연금·교육·노동 등 이른바 3대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성공적인 '의료개혁'이라는 성과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정부가 이렇게 예상보다 큰 증원 규모를 뚝심 있게 내놓은 것은 그동안 긴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의료계, 시민사회와 대화를 이어오면서 의대 증원의 당위성을 쌓는 '빌드업'을 해온 결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6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의 이날 의대 증원 발표는 지난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증원 추진을 언급한 지 1년 4개월 만이다.

조 장관은 당시 "의정합의를 토대로 충분히 여론을 수렴해 공론화를 기반으로 증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해가 바뀐 뒤인 지난해 1월 26일 대표적인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의료현안협의체를 꾸려 논의를 시작했다. 의대 증원은 복지부와 의협이 지난 2020년 의정협의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는 대로 논의하기로 합의한 4가지 안건 중 하나였다.

이후 복지부와 의협은 28차례에 걸쳐 마주 앉았지만, 큰 폭의 의대 증원을 주장하는 복지부와 의대 증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라는 의협 사이의 입장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작년 6월 열린 10차 협의체 회의에서 양측이 '의대정원 증원'에 합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의는 탄력을 받는 듯했지만, 의료계의 반발은 여전했다.

2023 제2차 보건 의료정책심의위에서 발언하는 복지부 장관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3년 제2차 보건 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참석해 의대 정원 단계적 확대 등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2023.11.1 hkmpooh@yna.co.kr

돌파구는 복지부가 같은 달 말 논의의 틀을 의료계 밖으로 확장하면서 나왔다.

당시 특정 학과의 대학 입학정원을 직역단체와 함께 결정하는 것이 국내 다른 학과나 해외 사례에 비춰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이에 복지부는 의료 수요자 단체도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도 의대 증원 문제를 논의하는 '투 트랙'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보건의료에 관한 주요 시책을 심의하는 위원회다.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며 노동자·소비자·환자단체 등이 추천하는 수요자 대표, 의료단체가 추천하는 공급자 대표와 보건의료 전문가, 정부 위원으로 이뤄진다.

보정심 개최에 대해 의료계는 반발했지만, 의대 증원에 대한 찬성 여론은 이후 더 커졌다.

작년 10월 설문(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갤럽)에서 64.9%가 찬성했던 의대 증원은 두 달 뒤인 작년 12월 설문(보건의료노조)에서는 찬성률이 89.3%까지 올라갔다.

대화 상대인 의료계를 '개원의 중심'인 의협 밖으로 넓힌 것도 상황이 정부에 유리하게 돌아간 계기가 됐다.

복지부는 의료계 원로들이 모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 개원의 중심인 의협과 입장이 다른 병원 관련단체 등으로 의료계 접촉면을 넓혔다. '의료계 내에 의대 증원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의료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대학들을 상대로 진행한 증원 수요 조사 결과는 증원 규모를 키우는 역할을 했다. 복지부가 작년 11월 대학들을 상대로 실시한 수요 조사에서 대학들은 2025년 2천151∼2천847명, 2030년 2천738∼3천953명 수준으로 예상보다 큰 폭의 증원을 희망했다.

보건복지부, 중소병원협회 간담회 개최 (서울=연합뉴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지난 23일 이성규 중소병원협회장 등 9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한중소병원협회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3.11.24 [보건복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지난 1일에는 지역·필수의료 분야 수가 인상에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보험과 공제 가입을 조건으로 환자가 동의할 경우 의료사고에 대한 기소를 면해주겠다는 '당근책'을 담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도 내놨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 우려나 의사에 대한 특혜라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의사들에게 '성의'를 보인 셈이다.

이처럼 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명분을 쌓은 것은 나머지 3대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의료개혁'의 성공을 시야에 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최근 들어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지역의료 강화에 대해 '의료개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의료개혁'이 다른 3가지 영역의 개혁과 달리 야권도 동의하고 여론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정책이라는 점도 추진의 강력한 동력이 됐다.

의대 증원에 대해서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3무 정권'이 드디어 좋은 일을 하나 하려는가 보다"(정성호 의원)라며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보건의료노조나 경실련 등 시민사회도 증원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부 고위관계자는 "2020년 이전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했던 때와 달리, 근거를 갖춰 증원 규모를 제기했다"며 "긴 시간을 들여 의료계나 의료 소비자 등과 대화를 나누며 충실하게 단계를 밟아 증원을 추진해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의대정원 증원 정책 지지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17일 오전 서울 국회 앞에서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이 의사 집단 진료거부 관련 여론 조사 및 인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2023.12.17 saba@yna.co.kr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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