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간첩 혐의 호주 작가에 ‘사형 집행유예’…양국 갈등 재연될 듯
중국이 5년 넘게 간첩혐의로 구금해온 중국계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에게 사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경악스러운 일”이라고 반발하며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일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날 중국계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양헝쥔(57)이 베이징 제2중급인민법원에서 간첩 혐의로 사형 2년 집행유예 및 재산 몰수형을 선고 받았다고 밝혔다. 왕 대변인은 “인민법원은 법에 따라 사건을 엄격하게 심리하고 소송 권리를 충분히 보호했다”며 “오스트레일리아 쪽이 사건의 선고를 들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도 말했다.
사형 집행유예는 사형선고를 내린 뒤 일정 기간 수형 태도 등을 살펴 징역형으로 감형해주는 중국 사법제도이다. 그는 2년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을 수 있다.
중국 태생인 그는 중국 정부의 보안기구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민해 2002년 시민권을 얻은 뒤 스파이 소설 작가로 활동해 왔다. 그는 이후 거주지를 미국으로 옮겨 소셜미디어 등에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민주화를 호소하는 글을 자주 올려왔다.
그는 지난 2019년 중국에 남아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광저우 공항에 내리자마자 중국 공안에 체포된 뒤 5년 넘게 수감돼 왔다. 중국 당국은 그가 간첩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엔 함구하고 있다. 심지어 그가 어떤 나라를 위해 간첩 활동을 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번 선고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 외교부 장관 페니 웡은 성명을 내어 “경악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것은 양과 그의 가족, 그를 지지하는 모든 이들에게 끔찍한 소식”이라며 “오스트레일리아인은 모두 그가 가족과 재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를 대변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펑충이 시드니기술대학 교수는 “그가 민주주의와 법에 의한 지배,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출판물을 내고 중국 정부의 인권 유린을 비판했기 때문에 탄압받고 있는 것”이라며 국제사회가 나서 중국이 그를 석방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11월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의 중국 방문이 전격 성사된 뒤 석 달 만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앨버니지 총리의 노동당 정부는 한 해 전인 2022년 집권한 뒤 오랜 불화를 겪은 양국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섰다. 중국도 이런 앨버니지 총리의 노력에 호응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중국은 앨버니즈 총리의 방중 한 달 전인 지난해 10월 간첩 혐의로 갇혀있던 중국계 오스트레일리아 언론인 쳉 레이를 3년 만에 전격 석방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두 나라 관계 개선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시드니 대학의 제임스 쿠란 교수는 “이번 사건은 양국 간 관계 개선의 한계를 보여준다”며 “의심할 여지 없이 양국 관계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리처드 맥그레거는 “중국이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양자 관계 개선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며 “두 나라가 관계 개선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했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선택지는 별로 넓지 않아 보인다. 웡 외교장관은 이번 일로 오스트레일리아 주재 중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고 밝혔지만, 대사 추방 같은 초강경 대응은 자제했다. 그는 올해 말 시 주석의 오스트레일리아 초청을 취소할 계획이냐는 언론의 질문에도 시 주석의 방문이 예정대로 이뤄질 것임을 내비쳤다. 그는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화하는 건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건 협력하고 할 수 없는 건 거부하는 것”이라며 “이번 건은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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