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습기 살균제 국가 손해배상 책임 첫 인정

방극렬 기자 2024. 2. 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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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해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6일 나왔다.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손해배상 소송 2심 판결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들고 있다./뉴시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성지용)는 이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5명이 국가를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발생한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달라”며 낸 소송에서 피해자 3명에게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이 7년여 만에 뒤집힌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미 위자료와 같은 성격의 구제 급여를 지급받은 2명에 대해서는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 사건은 옥시레킷벤키저, 세퓨 등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이 2014년 제조‧판매사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2011년 첫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발생한 후 제조사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된 10여건의 소송 중 하나였다. 원고 측은 환경부가 2003년 살균제 원료인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에 대해 유독 물질이 아니라고 판정한 것 등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2016년 1심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사이에 인과(因果)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제조사의 배상 책임은 인정했다. 그러나 국가의 배상 책임은 부정됐다. 1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위법 행위가 없었고, 피해자들이 낸 신문 기사나 보도 자료만으로는 국가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1심 판결 이후 피해자 측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에서 조사한 환경부 문서와 과학적 연구 결과 등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항소심은 7년여간의 심리 끝에 원심을 뒤집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환경부 장관 등은 가습기 살균제 화학 물질에 대한 유해성을 충분히 심사하지 않고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한 뒤 10년 가까이 방치했다”면서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여 위법하다”고 밝혔다. 또 “환경부 장관 등은 가습기 살균제가 유독 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면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이날 판결이 확정되면 피해자들은 위자료를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2심에서 원고들이 앞서 정부로부터 지급받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각종 지원금 등을 고려해 배상액은 300만~500만원으로 책정됐다. 또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에 따라 구제 급여 조정금을 지급받은 경우, 배상액 중복 지급이 안 돼 손해배상 대상에서 빠졌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에서 인정한 개별 배상액은 작지만 정부에서 인정된 피해자 수가 7000여명인 만큼 파급력은 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변호인단은 이날 선고 이후 “국가 책임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앞으로 이어질 국가 배상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특별법에 따른 구제 급여를 손해배상액에 참작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환경부는 “판결문 검토 등을 거쳐 상고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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