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거장과 어깨 나란히 한 셀린 송 “K콘텐츠가 길을 열어줘”[인터뷰]
“난 한국인이자 뉴욕 사람이자 캐나다 사람”
다음달 6일 국내 개봉…“한국 관객 만나고파”
지난달 발표된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각본상 후보 명단에 낯선 한국계 감독이 이름을 올렸다. 주인공은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36·한국 이름 송하영). 이 신인 감독은 첫 연출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크리스토퍼 놀런·마틴 스코세이지 등 세계적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6일 오전 화상으로 만난 송 감독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데뷔작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됐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영광”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한국어로 진행됐다.
1988년 한국에서 태어난 송 감독은 12세 때 캐나다로 이민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극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0년간 연극 극작가로 활동했다. 2019년 한국 해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를 현지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송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인 <패스트 라이브즈>가 연극보다 영화에 알맞다 판단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아시아와 북미 두 대륙을 가로지르고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가는 이야기예요. 어린아이인 시절과 어른인 시절을 비주얼하게(시각적으로) 보여주기에 영화가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헤어진 두 남녀가 24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틀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그레타 리가 열두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나영’을, 한국 배우 유태오가 첫사랑 나영을 찾아가는 ‘해성’을 연기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을 만든 미국 제작사 A24와 한국의 CJ ENM이 합작했다.
지난해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단숨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전미비평가협회 작품상·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작품상 등 60여 개 상을 휩쓸었고 지난 연말 뉴욕타임스·가디언 등 세계 주요 매체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에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현재 시점의 이야기가 각각 서울과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송 감독이 기억하는 1990년대 서울의 풍경이 그대로 담겼다. “아주 개인적인 영화입니다. 저는 한국인이고 또 뉴욕 사람이기도 해요. 제 안에 캐나다 사람인 부분도 있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제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고 제가 두고온 것들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는 겉으로뿐 아니라 철학이나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깊이 한국적입니다.”
<패스트 라이브즈>에서는 ‘인연’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서구권 관객에게 익숙지 않은, 지극히 한국적인 개념이다. “영화에는 한국계 미국인인 주인공이 미국 남성에게 인연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이 있어요. 한국인이 아닌 관객도 인연이라는 아이디어를 마음에 품고 영화를 보게 되는 거죠.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인연을 받아들이고 또 느끼는 모습을 보게 되어 진짜 행복해요.”
송 감독은 <패스트 라이브즈>가 한국적인 영화이지만, 이민자 정체성이 담겼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라고 했다. 그는 “이민자 정체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곳에 이사 가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경험을 모두가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달 11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패스트 라이브즈>는 작품상과 각본상 2개 부문 후보로 선정됐다. 한국계 또는 한국인 감독의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2020년 <기생충>(봉준호), 2021년 <미나리>(정이삭) 이후 세 번째다. 송 감독은 <기생충>을 비롯한 K콘텐츠에 공을 돌렸다. 그는 “<기생충> 이후 자막이 있는 외국 영화가 (미국 현지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게 됐다”며 “<패스트 라이브즈>가 글로벌 관객에게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는데, <기생충>과 K팝·K드라마가 길을 열어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송 감독은 <넘버 3> <세기말> 등 영화로 1990년대를 풍미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송능한 감독은 딸이 대를 이어 연출자의 길을 걷게 된 데 이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자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온 가족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실 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은데 솔직히 심플했어요. 그냥 좋고 행복하고,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웃음).”
<패스트 라이브즈>는 다음달 6일 국내 관객과 만난다. 송 감독은 긴장과 기대가 교차하는 얼굴로 말했다. “한국에서 많은 응원을 보내주고 계셔서 정말 감사하고 꿈만 같아요. 제 영화를 한국 관객 분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긴장되고 신납니다. 어서 한국에 가서 관객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401241110001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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