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살권수’, 뒤에선 ‘고발사주’ [아침햇발]

이춘재 기자 2024. 2. 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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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검찰총장이 5일 오전 대검찰청에서 열린 22대 총선 대비 전국 검찰청 선거전담 부장검사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이춘재 | 논설위원

‘고발사주’ 1심 판결문을 읽고 나면 ‘검찰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검찰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던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에서 검사들이 검찰총장과 그 부인(김건희)의 ‘명예회복’을 위해 검찰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를 저질렀다. 재판부는 검사들(손준성, 임홍석, 성상욱)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기고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당시 야당에 고발을 ‘사주’했다고 판결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검찰총장이 정작 부하들에겐 충성을 강요했던 걸까. 판결문에 등장하는 검사들의 행위는 검사가 한 짓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모하다.

재판부는 2020년 4월 두차례에 걸쳐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이 조성은(당시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씨에게 전달한 고발장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임홍석 검사가 작성했거나”, “최소한 공소장을 써본 사람이 작성하거나 검토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결문에 썼다. 고발장을 검사가 직접 썼거나 최소한 관여했다는 사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 고발장의 목적은 피해자 ‘윤석열·김건희·한동훈’의 명예를 훼손한 당시 여권 인사와 기자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검·언 유착’ 의혹이 허위 사실임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고발장이 작성된 시점은 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고발장 작성자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서는 허위 여부를 알 도리가 없었다. 따라서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는 직책(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맡고 있던 손준성 검사가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검사장’에게 이를 확인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달리 말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당시 고발장 작성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은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손 검사가 보고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냐고? 만약 고발했다가 ‘검찰총장 사모’에게 제기된 의혹이 허위가 아닌 걸로 드러난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일개 검사가 그랬겠는가. ‘검사동일체’가 공공연하게 강조되는 조직에서 그럴 확률은 0에 가깝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고발장 전달을 앞두고 한 위원장, 손 검사, 권순정 당시 대검 대변인(현 법무부 검찰국장)이 있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의 대화가 급증했다. 첫 고발장 전달 사흘 전인 3월31일 93회, 4월1일 66회, 4월2일 138회 등이다. 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전화 통화 횟수도 4월1일 12회, 2일 17회로 매우 잦았다. 한 위원장이 ‘검·언 유착’ 수사에서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끝내 숨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당시 검찰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를 겨누고 있었다.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이 ‘대통령 친구’(송철호 전 울산시장)의 당선을 위해 같은 당의 경선 후보를 매수하고, 상대 후보에 대한 ‘하명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이번 판결을 보니, 앞에선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다’고 큰소리치고, 뒤로는 총선에 개입할 의도로 ‘고발사주’ 공작을 꾸미고 있었던 셈이다. 이건 ‘내로남불’ 아닌가.

검찰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2022년 5월 손 검사를 기소했을 때 이런 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원석 검찰총장은 2023년 4월 손 검사에 대한 감찰을 ‘무혐의’로 종결했다. 이 총장은 취임할 때 검사들에게 “해야 할 일은 성심을 다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경계하고 삼가는 자세를 항상 마음에 새겨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또 자신을 ‘감찰총장’이라 불러달라고 공언할 정도로 검사들의 비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 검찰총장이 중대 범죄 혐의로 기소된 손 검사를 화끈하게 봐준 것도 모자라 나중에 검사장 승진까지 시켜줬다. 말과 행동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원석 총장은 최근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지 않고 바르게 반영될 수 있도록 각 지역의 선거범죄에 엄정 대응하라”고 검사들에게 지시했다. 설마 이번 총선에서도 야당만 겨냥한 수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당장 손 검사와 공모한 것으로 드러난 김웅 의원을 재수사하고, 고발사주에 연루된 검사들을 모조리 감찰한다면 검찰총장의 진정성을 조금이나마 믿어볼 수 있으련만, 글쎄다. 총장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고, 새 법무장관은 무려 10년 선배다. 어쩌다 검찰이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사고 친 이들은 하나둘씩 떠나고, 부끄러움은 항상 남은 자들의 몫이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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