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고 싶은 아름다운 책...'말들의 흐름', 4년 걸린 이어달리기 끝냈다

전혼잎 2024. 2. 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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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끝말잇기 한 연작 에세이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시작과 끝
최선혜 시간의흐름 대표·이제니 시인
출판사 시간의흐름이 낸 에세이 연작 '말들의 흐름'이 지난달 25일 이제니 시인의 '새벽과 음악'으로 완간됐다. 1인 출판사에서 낸 시리즈로는 이례적인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었다. 김예원 인턴기자
‘커피와 담배-담배와 영화-영화와 시-시와 산책-산책과 연애-연애와 술-술과 농담-농담과 그림자-그림자와 새벽-새벽과 음악.’

4년에 걸쳐 저자 15명이 10권의 책으로 이어온 끝말잇기가 끝났다. 앞사람이 두 개의 낱말을 제시하면, 다음 사람이 두 번째 낱말을 이어받아 제목을 연결하는 에세이 연작 ‘말들의 흐름’ 시리즈 이야기다. 2020년 4월 정은 소설가의 ‘커피와 담배’를 시작으로 2024년 1월 이제니 시인의 ‘새벽과 음악’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1인 출판사가 기획한 에세이 연작은 예상 못 한 ‘덕후(마니아)’를 만들어냈다. 한정원 작가의 첫 책이기도 한 ‘시와 산책’은 4만 권 이상 팔려나가 베스트셀러가 됐고, 완간 소식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10권을) 드디어 다 모았다”는 인증 사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일보는 최근 출판사 시간의흐름의 최선혜 대표와 이 시인을 서면으로 만나 책을 통한 끝말잇기 놀이의 출발과 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삶을 견딜 만하게 하는” 11개의 단어들

10권의 책은 최 대표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짐 자무시의 영화 ‘커피와 담배’를 떠올리면서 첫걸음을 뗐다. 그는 “영화에는 주야장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세 가지 단어(영화·커피·담배)를 ‘끝말 잇듯이 이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문학과 인문, 예술을 좋아하는 이들이 하루의 시간이 주어질 때 할 수 있는 11개의 일상 속 단어를 추렸다. 보편적이고 사소하지만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담배와 영화·금정연)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단어들이다.

최 대표는 친구인 금정연 작가, 정지돈 소설가에 이어 시리즈의 마지막을 이 시인에게 부탁했다. 평소 시를 ‘문자로 된 리듬’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음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시인이다. 이 시인은 “새벽과 음악은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든 깊이 천착해 보고 싶은 매력적인 주제”라면서 “(주제를 듣고) 많이 설렜다”고 했다.


작가들이 공유하는 언어의 이어달리기

이제니 시인. 시간의흐름 제공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단순히 담배를 피우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기억을, 감정을 잠시 소환하는 의식에 가깝다.” (커피와 담배·정은)

“대개 서른, 마흔, 예순 같은 나이에 큰 의미를 두고 ‘꺾인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삶을 꺾이게 하는 것은 그보다는 ‘사건(경험)’이라고 생각한다.”(시와 산책·한정원)

“오늘의 내가 오늘의 모습일 수 있었던 것도 많은 부분 음악에 빚졌다고 생각한다.”(새벽과 음악·이제니)

시리즈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입소문을 탄 건 이처럼 특정 단어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깊은 사유를 담아내서다. 끝말잇기라는 참신한 기획에 더해 읽는 이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의 힘이 독자를 끌어냈다. 이는 정지돈 편혜영 유진목 이제니 등 이미 두꺼운 팬층을 가진 이들뿐 아니라 한정원 김괜저 김민영 등 신인 작가들까지 앞선 이로부터 배턴을 넘겨받아 치열하게 고심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애초 1년으로 예상했던 시리즈의 완결까지 걸린 시간은 4년이 됐다.

이 시인도 ‘새벽과 음악’ 집필에 앞서 “무수한 레퍼런스(창작 과정에서 참고하는 콘텐츠)를 가진 방대한 영역이라 나만의 글쓰기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도 컸다”고 전했다. “그런 생각 속에서 음악과 새벽에 대한 직접적인 사유를 담은 책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경유해 도착한 시론의 성격이 강한 책으로 맺어지게 됐다”는 것이 시인의 말이다.


어딘가 ’남다른’ 말들의 흐름

출판사 시간의흐름의 연작 에세이 '말들의 흐름'. 김예원 인턴기자

말들의 흐름 시리즈는 여러모로 남다른 책이다. 책을 집어 드는 순간의 느낌부터 다르다. 빳빳하지도, 그렇다고 물렁물렁하지도 않은 종이 표지의 반양장 제본이 주는 촉감에 괜히 두어 번 더 어루만지게 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2020)’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한 독자는 “이 시리즈는 반듯하고 두꺼운 다른 책과 다른 물성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코팅하지 않아 갈수록 손때 타는 표지가 오히려 켜켜이 쌓이는 시간의 흐름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기승전결 없는, 그야말로 말들의 흐름으로 이어온 4년의 끝이다. 이 시인은 “이 시리즈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앞선 책들을 읽어주신 독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독자들도 그간 저마다 낱말과 관련한 사유를 쌓으며 작가들과 함께 달려온 시간이었다. “당신은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언어가 있었음을, 그리하여 말하지 못한 그 말을 어느 깊은 새벽 홀로 깨어나 백지 위로 옮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라는 이 시인의 문장처럼.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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