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기소 14명 모두 ‘재판개입’ 1심 무죄

“권한 없으니 직권남용 아니다”
법원, 사법농단 판단 끝난 듯
법조계 “檢 무리한 항소 자제”

이른바 ‘사법 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4명 모두 재판에 개입했다는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며 이에 대한 법원 판단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한 전직 고위 판사 3명만 행정처 내부에서 부당 지시를 한 혐의에 대해 하급심 유죄를 인정받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상급심 판단이 바뀔 것 같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항소나 상고를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위직 판사 출신 변호사는 6일 “법리적인 관점에서 재판 개입 혐의를 직권남용죄로 기소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가 있었다”며 “검찰이 문재인 정부 초기 검찰개혁의 화살을 돌리기 위해서 사건을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고위 판사들의 사법행정권 남용은 처벌할 수 있었지만, 재판 개입은 그 어떤 판사도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직권을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도 관련 사건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사법 농단 사건 ‘실질적 실행자’로 지목된 임 전 차장까지도 전날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부장 김현순)는 “수사 초기 언론을 통해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던 ‘사법 농단’이나 ‘재판거래’에 관한 중대한 의혹들은 수많은 검사가 투입돼 수사가 이뤄지고 300쪽 넘는 공소사실로 정리되는 동안 이미 대부분의 실체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행정권 남용 중에서도 핵심인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 등은 무죄가 나왔다. 다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 처분 관련 법원 결정 문제점 검토 지시 등 일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확정판결은 아니지만, 유죄 선고 3명 중 가장 형량이 높았다. 임 전 차장 외에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일부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돼 2심까지 각각 벌금형과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사법 농단의 정점으로 수사를 받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26일 1심에서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서는 사법 농단 관련 큰 줄기는 이미 판단이 끝났고,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린 일부 사실관계 조정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 1심 재판부가 일부 법관 연구모임을 와해시키는 방안을 검토한 행위에 대해 임 전 차장의 직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봤지만, 임 전 차장 사건 1심 재판부는 무죄로 봤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을 통한 사실관계 확정 필요성은 보이지만, 유·무죄나 형량을 크게 바꿀 수 있는 판단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도 무분별한 항소나 상고는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웅 기자 leeh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