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선고하라” 재판개입 아니라는 임종헌 재판부···양승태 재판부와도 다른 판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사건을 각각 심리한 1심 재판부가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과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등 여러 혐의에 대해 엇갈린 판단을 내놓았다.
임 전 차장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위상 강화를 위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 ‘사건을 빨리 선고하라’고 요청하고, 대법원을 비판하는 인권법연구회의 와해 방안을 마련한 게 정당한 사법행정이라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가 ‘위법한 행위’라고 규정한 것과 대비된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는 법원행정처가 법관 독립 침해 행위를 했다고 여럿 인정했지만 임 전 차장 재판부는 그런 판단도 소극적으로 한 것이다.
결국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 판결에선 법원행정처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임 전 차장 판결에선 사법행정의 재량 범위를 넓게 해석하고 직권남용죄를 소극적으로 적용해 임 전 차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 전 차장 판결 분량은 전체 567쪽으로, 양 전 대법원장 판결(3160쪽)의 6분의 1가량이다. 임 전 차장 재판부는 판결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의 공모 여부에 대해선 주요하게 언급하지 않았고, 일부 언급한 대목에서는 공모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조기 선고’ 요청..양승태 재판부 “재판 개입”, 임종헌 재판부 “재판 영향 없어”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김현순·조승우·방윤섭)의 임 전 차장 판결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법원행정처가 매립지 귀속 분쟁을 심리하던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에게 선고 시기, 판결 이유 설시에 관한 의견을 전달한 것에 대해 “재판관여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때 헌법재판소 업무를 담당했던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2016년 김현석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에게 매립지 귀속 분쟁과 관련해 ‘김소영 대법관 주심 사건을 조기 선고하는 절차를 진행하라’, ‘선고이유에서 지방자치법의 합헌성을 언급하는 것은 법원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므로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 등 내용이 담긴 문건을 전달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위상을 강화하고 헌재를 견제하려고 대법원 재판에 위법하게 개입했다며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을 기소했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의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이를 재판 개입으로 인정했다. 이 재판부는 “법원행정처의 의견 전달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사건 심리 및 재판에 관한 조사 연구 업무에 개입하거나, 선임재판연구관을 통해 대법관의 재판에 개입하는 내용”이라며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은 그 중 2016년 10월19일 재판 개입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과 고 전 처장이 구체적으로 ‘조기 선고 요청’을 지시하진 않았다면서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임 전 차장 재판부는 이를 재판 개입 자체가 아니라고 봤다. 이 재판부는 ‘조기 선고 요청’에 대해 “사법행정적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는 내용이고 대법원의 위상을 강화하고 권한을 확대하려는 목적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사법행정의 한계를 넘어 위법하다거나 재판 절차 진행, 결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재판부는 또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사건과 관련해 법률적·법리적 내용뿐 아니라 ‘정무적이거나 사법정책적 측면’도 조사해 대법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결 이유에 해당하는 내용을 검토하는 부분은 부적절할 수도 있으나 그 정도가 형사처벌 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위법성을 가진다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인권법연구회 와해 시도 인정…하지만 임종헌 재판부 “행정처 재량 판단”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혐의를 두고도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렸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작성한 2016년 3월 보고서에는 인권법연구회 와해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법관은 연구회에 중복으로 가입할 수 없다는 공지문을 올려 연구회 탈퇴 분위기를 조성한 뒤 인권법연구회의 ‘자연스러운 소멸’을 유도한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인권법연구회가 상고법원 도입 등 ‘양승태 대법원’이 추진한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학술행사를 하자 법원행정처가 이를 막기 위해 법관의 표현·연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지시를 했다며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을 기소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는 이 보고서 작성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부는 “인권법연구회 자체 및 그 활동에 대한 위축방안과 제재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서 상당성을 결여했다”며 “임 전 차장의 보고서 관련 지시는 법관의 표현·연구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응 방안을 검토하도록 한 위법·부당한 지시에 해당한다”고 했다.
반면 임 전 차장 재판부는 ‘법원행정처 재량’이라고 했다. 이 재판부는 “연구회 활동이 설립목적에 위배하는 것인지는 설립허가를 한 주체의 판단에 재량의 여지가 있고, 그러한 판단이 재량 범위 내라면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심의관에게 예규 위반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검토하도록 하는 것은 임 전 차장의 업무 범위 내 행위일 뿐만 아니라 필요성이 인정되는 직권 행사”라고 했다.
연구회 탄압으로 탈퇴했지만 “중복가입 금지 예규 지킬 의무 있다”며 무죄 판단
임 전 차장이 2017년 3월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 공지문’을 작성하게 시킨 혐의에 대해서는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와 임 전 차장 재판부 모두 ‘직권의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 재판부는 해당 공지문은 인권법연구회를 ‘해체’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이었다면서 “의견수렴을 거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인사모(인권법연구회)의 해체를 전격적으로 시도한 것은 상당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2017년 1월말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이 인권법연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임 전 차장이 주재한 실장회의에서 중복가입 해소조치 실행을 결정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를 두고 판단이 달랐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는 2017년 3월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 공지문을 작성하게 시킨 게 직권남용죄 성립 요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반면 임 전 차장 재판부는 그렇지 않다고 봤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상급자가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 또 하급자로 하여금 직무수행의 원칙·기준·절차를 위반(의무 없는 일)하게 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피고인들은 연구회 중복가입을 금지하는 예규에 근거한 정당한 공지문 작성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해당 예규는 사문화됐고 공지문의 실제 목적은 인권법연구회 탄압이어서 위법하다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는 의무 없는 일이 맞다고 했다. 예규의 규범력 회복은 표면적 목적일 뿐, 공지문의 주된 목적은 ‘인권법연구회 탄압’이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공지문 내용은 법관의 표현·연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위법하다”며 “심의관이 위법한 공지글을 작성할 의무는 없다”고 했다.
이와 달리 임 전 차장 재판부는 공지문의 실제 목적이야 어찌 됐건 법관은 예규를 지킬 의무가 있다면서 예규에 따라 심의관이 공지문을 작성한 것은 의무 없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공지문 때문에 법관 100명이 연구회를 탈퇴하게 만든 혐의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이규진 전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가 중복가입 해소조치 공지문 작성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것, 2심 재판부가 여기에 더해 법관 100명의 연구회 탈퇴 혐의까지 유죄를 선고한 것과 배치된다.
이 전 상임위원 등 사건의 2심 재판부는 “중복가입 해소조치의 실질적 목적은 인권법연구회 제재였고, 법관의 학술적 결사의 자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를 규정한 예규 자체가 법관의 학술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도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402051907001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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