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경영 목적” [이재용 1심 무죄판결]

2024. 2. 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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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만 볼수 없어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부정 혐의도 무죄
최지성·장충기 등 전·현직 관계자 모두 무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상섭 기자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부당 승계 의혹이 8년 만에 반환점에 들어섰다. 2020년 9월 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뒤 1252일 만에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부장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5일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자본시장법),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전·현직 삼성 관계자와 삼정회계법인 관계자 14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검찰이 항소할 경우 2심과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

이 회장에게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총 19개. 이 회장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의 합병 계획 수립부터 합병 이후 주가 관리, 회계 조작 혐의까지 전 단계를 아울렀다. 하지만 재판부는 19개 혐의 모두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합병은 합리적 사업 목적”...검찰 기소 전제부터 틀렸다=우선 재판부는 모든 혐의의 전제가 되는 ‘합병의 목적’부터 판단했다. 합병은 이재용 회장이 가장 효율적으로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이 회장과 삼성그룹이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양사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종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선고는 단호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경영권 승계를 유일한 목적으로 진행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사업적 목적 또한 합병의 목적”이라며 “합리적인 사업상 목적이 존재하는 이상 합병에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 해도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양사 합병은 오래 전부터 예상되던 시나리오 중 하나다. 삼성물산의 성장 정체 및 위기 극복을 위해 경영실, 미전실, 합병 태스크포스(TF) 등을 통해 심도 있게 검토해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검찰이 제시한 핵심 증거였던 2개 문건에 대해 “프로젝트G(governance) 문건은 이건희 사망 시 막대한 상속세 납부에 따른 지분 감소 및 지분율 변화, 순환 출자 등 외부 규제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 보고서다. M사 합병 추진안 또한 당사들의 합병 본격 검토를 전제로 삼성그룹에서 합병 업무를 접해본 미전실이 삼성증권 IB본부의 도움을 받아 실무적 차원에서 검토한 것으로 합병 추진안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업무상 배임 또한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삼성물산 가치 저평가로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게 합병이 됐다며 이 회장과 삼성물산 관계자들에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무엇보다 삼성물산 이사는 회사에 대한 임무를 부담할 뿐 주주에 대한 임무를 내용으로 하는 공소 사실은 그 자체로 타당하지 않다”며 “객관적·개연적으로 기대되는 (주주의) 이익 상실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바이오 계열사 분식회계도 무죄=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회계 조작) 의혹 역시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핵심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해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일모직의 핵심 계열사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젠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년 합작해 설립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 업체다. 설립 당시 지분 구조는 삼성바이오로직스 85%, 바이오젠 15%였다.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50%-1주를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 ▷제품 추가, 생산활동 등 중요 의사 결정에 대한 동의권 등을 가지고 있었다. 검찰은 이를 공시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바이오 업계 특성에 따른 회계일 뿐 분식 회계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먼저 콜옵션 누락에 대해서는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은 에피스 설립 초기 리스크를 회피하고 안정되면 사용하는 것이다. 2012, 2014 회계연도까지 콜옵션 행사로 얻을 수익이 크지 않아 반드시 공시해야 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콜옵션은 초기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바이오 업계의 관행으로 콜옵션이 주주와 회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실질적 권리’가 되기 전까지는 공시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 회계연도 회계 처리에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전까지 종속회사로 처리하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회계상 지분 평가 방식도 바뀌었다. 종속회사인 경우에는 지분 가치가 장부가액(3000억원)으로 인식되지만 관계회사의 경우에는 공정가치(4조8000억원)로 인식한다. 검찰은 이를 편법 회계를 통한 매출 부풀리기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사업 성공이 가시화된 결과로 봤다. 복제약 출시가 현실화 되면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에 따른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구조 변화를 감안해 관계회사로 변경했다는 삼성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2014 회계연도까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단독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봐야 한다”며 “2015년 엔브렐 바이오시밀러가 유럽 판매승인권고를 받으면서 바이오젠 콜옵션이 실질적 권리가 돼 바이오젠이 공동으로 지배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분식회계라 볼 수 없다”고 했다. 박지영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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